[3편] 리루 강연 – 북경대학교 가치투자 10주년 기념 ‘우리 시대의 글로벌 가치투자’

본 문서는 2024년 12월 7일 북경대학교 가치투자 과정 10주년을 기념하여 리루가 강연했던 대본을 정리한 문서다.

내용이 많아 5편으로 분리하여 정리하였으며, 다소 오역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유의하길 바란다. (영문이 더 편하다면,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직접 영문으로 읽어보길 권장한다.)

중진국 함정,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국제 정세에 대한 생각

지난 500년간의 근대화 과정을 돌아보면, 중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풍부한 경험과 교훈을 축적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중국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현재의 국제 환경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우선, 지속적인 복합 성장(compound growth)을 이끄는 3.0 경제의 핵심 동력은 바로 경제 내 모든 요소들의 자유로운 교환과 순환입니다. 상품, 서비스, 지식 등 모든 요소들이 자유롭게 교환될 때, 각 거래는 1+1이 2를 넘어서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지식의 교환은 1+1이 4를 넘어서는 배수 효과까지 창출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교환이 활발하고 막힘없이 순환될수록 경제적 효율성과 부가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진정으로 현대화되고 지속 가능한 3.0 경제는 이런 완전하고 막힘 없는 순환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경제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병목현상(bottleneck)**이 발생하면, 그 자체로 성장을 제한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 내에서 아직 완전한 순환과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요소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두 가지 사례를 짚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개인 소비 비중의 문제입니다. 현재 중국의 개인 소비는 GDP의 약 40% 수준에 불과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비중이 최근 몇 년간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저축률은 40%에서 약 50%까지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쌓인 막대한 저축의 대부분은 국유 은행이 장악한 은행 시스템 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이 과연 경제 전반으로 저축을 원활히 순환시켜 재투자와 소비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축이 경제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례는 없습니다. 저축이 진정으로 성장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현대화된 자본시장과 효율적인 금융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과 순환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발전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초기의 금융 시스템은 베네치아에서 등장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중세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 무려 천 년 이상 존속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화국이었습니다. 서기 1000년부터 1500년까지, 인구가 수만 명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핵심 무역로를 거의 독점하며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 제국으로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베네치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오늘날의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핵심이 되는 여러 요소들을 베네치아가 최초로 고안해냈기 때문입니다. 복식부기(double-entry bookkeeping) 이후 등장한 주식회사(joint-stock company), 보험 제도(insurance systems) 그리고 무역과 연결된 은행 시스템(banking systems) 이 모든 것들이 현대적 금융과 무역의 근간이 되었으며, 베네치아가 당시 세계 최대 무역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였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주로 금융과 무역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좁은 영토적 기반으로 인해 농업과 산업이 부족했고, 다른 국가들은 여전히 농업 중심의 문명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네치아는 진정한 의미의 3.0 현대 과학·기술 문명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네치아가 만들어낸 금융 시스템과 도구들은 이후 더 큰 나라에서 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졌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1581년, 네덜란드는 독립을 선언했고, 이후 70년에 걸친 긴 독립 전쟁 끝에 17세기 가장 중요한 해상 무역 제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인구가 수백만 명 규모로 베네치아보다 조금 더 많을 뿐이었지만, 전 세계 무역의 약 4분의 1을 네덜란드 선박이 담당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네덜란드는 현대 금융 시스템의 초기 형태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유한책임 공기업(public limited liability company)이라는 개념을 발명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가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로 기록됩니다. 네덜란드는 또한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를 설립했으며, 증권 시장 역시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심지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금융 투기 거품이라 할 수 있는 튤립 버블(Tulip Mania)도 이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금융 혁신 덕분에 네덜란드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크게 앞서 1인당 GDP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고, 이후 4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개국 중 하나의 위치를 유지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의 무역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4세기 이상 번영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역시 산업·과학·기술·제조업 기반의 본격적인 3.0 경제로 진화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부분은 결국 영국이 달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입니다. 이 혁명은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정치·거버넌스 측면에서, 영국은 공화적·입헌군주제 체제를 도입합니다. 왕은 더 이상 절대군주가 아니라, 의회와 여러 권력기관의 견제를 받는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두 번째이자 더 본질적인 변화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금융·경제적 통합이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국왕 윌리엄 3세(William III)**가 영국 왕비 **메리 2세(Mary II)**와 함께 영국 공동 군주로 즉위하게 되는데, 사실상 네덜란드와 영국의 통합 지배자가 된 셈입니다.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 금융 시스템 전체를 영국으로 이식했습니다. 말 그대로 **제도적 차원의 ‘합병(Merger)’**이었던 것입니다.

이 합병을 통해 완성된 현대 금융 시스템 전체가 영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완성된 현대 자본시장과 금융 시스템의 궁극적인 산물은 무엇일까요?

자본시장은 단순히 자본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은행도 자본을 공급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신뢰의 시스템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신뢰의 시스템이란 무엇일까요? 기업가는 기업가로서의 신뢰를, 투자자는 투자자로서의 신뢰를 갖춰야 하고, 저축과 투자를 연결하는 중개자들 또한 각자의 신뢰를 갖춰야 합니다. 이 모든 신뢰가 모여, 결국 사업과 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소액 저축자들의 돈을 모아 거대한 자본 저수지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축적된 자본은 생산성, 공급, 수요, 그리고 이익 창출로 이어지는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유기적이고 지속적인 선순환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 중개자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노드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최종적인 결과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신뢰라는 시스템을 통해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소액 저축자조차 성공적인 기업의 작은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작은 지분이라도 주식을 가진 수많은 소액 투자자들이 모이면 거대한 자본력이 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각 중개자는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그렇게 모인 자금은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과 상품·서비스로 흘러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법률 시스템, 분쟁 해결 절차, 최고 수준의 관행, 그리고 신뢰로 연결되는 완전한 신뢰의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나게 어렵고, 끊임없는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이 시스템을 이식하고 정착시킨 이후,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다시는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 영국은 왕실이 직접 전쟁 자금을 조달했으며, 왕실의 개인 자산과 수입, 영토까지 담보로 잡고 무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현대적 신용 시스템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이 신용 시스템을 통해 영국은 자국 GDP의 몇 배에 달하는 국가 채무를 발행했으며, 세계 각국의 투자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도 파산하거나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현대적 자본시장 시스템이었습니다.

과학기술 혁신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이 현대적 시스템 덕분에 영국은 유기적이며 자생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최초의 현대적 3.0 경제체제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국가의 정의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중국의 GDP에서 개인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40%에 불과하고, 저축이 거의 50%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저축의 거의 전부가 국유 은행 시스템의 통제 하에 있으며, 비효율적이고 신뢰의 시스템을 구축할 능력이 없습니다. 중국이 세운 자본시장 시스템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고, 최근 몇 년간 오히려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지금의 시스템은 현대적 자본시장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고, 막대한 저축을 소비와 투자로 전환해 경제를 움직이게 할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중국에게도 영국이 가졌던 역사적 기회와 비슷한 기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영국이 중국에 남긴 선물 — 홍콩입니다.

홍콩은 현대적 자본시장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완비된 제도, 법적 시스템, 분쟁 해결 메커니즘, 자리 잡은 금융중개기관들, 그리고 국제사회와 투자자들의 신뢰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들은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관계가 ‘대등한 합병’이었다면, 중국과 홍콩의 관계는 ‘인수’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인수의 경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큰 차이입니다. 만약 홍콩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 이는 중국 자본시장 활성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홍콩과 중국 본토의 자본시장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이는 과거 심천경제특구가 서로 다른 시스템을 병행해 운용하며 전국적인 개혁의 물꼬를 튼 사례와 같은 논리입니다. 후강퉁(상하이-홍콩 증시 연결 제도) 역시 중요한 혁신이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인수’를 통해 확보한 홍콩 시장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현대적이고 신뢰 기반의 자본시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여전히 그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 내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 부여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정책과 조치들이 오히려 홍콩이 독립적인 금융시장으로 존재하는 근본적인 기반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제때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 경제는 여전히 본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로서는 정책적 경기 부양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부양책은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닙니다. 부양책이 효과를 가지려면 결국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매년 새로운 부양책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중국은 종종 ’중국식 현대화’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각국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국식 현대화의 본질 역시 결국 ‘현대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현대화를 경험한 국가들과 많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중국은 이러한 공통의 원칙을 기반으로 현대화를 추진하되, 중국 고유의 특성을 보완적으로 더해 ‘중국식 현대화’를 완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지난 수백 년간 시행착오와 성공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들로, 무엇이 효과가 있고 무엇이 효과가 없는지에 대한 인류의 합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찰리 멍거가 말했듯 ’상식(common sense)’은 매우 드물며, 사람들은 대개 상식을 어겼다가 큰 대가를 치른 뒤에야 비로소 상식을 배우게 됩니다.

현대적 시장경제는 400-500년 동안 운영되며 발전해 온 시스템으로, 이 과정에서 형성된 일부 합의된 원칙들은 더 이상 논쟁하거나 의심하거나 함부로 부정해서는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합의는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처음 체계화했으며, 그는 당시 시장경제 시스템이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넘어오며 100-200년간 점차 성숙해가는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 본성이 본래 이기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시장경제의 가장 위대한 점은 ‘분업과 자유 경쟁’을 통해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사회적 이익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사회적 자원의 최적 배분을 이루고, 모든 계층이 혜택을 누리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촉진해 계층 간의 상향 이동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입니다. 결국 ’모두가 나를 위해, 나는 모두를 위해’라는 이상적인 상태가 시장경제 시스템을 통해 실현된 것입니다. 시장경제 시스템은 ‘모두가 나를 위해 행동하는’ 유인 구조를 통해 결과적으로 ‘나는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사회적 이익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류가 발명한 모든 불완전한 시스템 가운데 시장경제는 단연 가장 위대한 발명임이 틀림없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수많은 사회적 실험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이 사실은 반복적으로 증명되어 왔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합의된 원칙을 비판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으며, 상식을 거스른 대가를 또다시 치를 이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시장경제에서는 대부분의 자원 배분 결정이 민간 개인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어느 저명한 기업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결정은 총성이 들리는 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후방에서 총성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옳은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중국의 시장경제가 오늘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정부가 지속적으로 권력을 내려놓고, 물러서고, 지휘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로 변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돌파구와 기술 발전도 결과적으로 고도로 시장화된 경제 시스템에서 나오는 산물일 뿐, 그 원인이 아닙니다. 이 역시 시장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이자, 국제 사회의 폭넓은 합의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민간 기업이 번창하려면 개인과 재산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 보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업가가 자신의 신변 안전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제대로 사업을 경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 분쟁의 해결 또한 절차적 정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와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차이는 결국 정부 권력이 법에 의해 견제받고 있는지, 그리고 법적 절차가 공정하게 집행되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자의적 법 집행’, ‘선택적 법 집행’, ‘타 지역 강제 연행’과 같은 현상이 발생했을 때, 기업가들은 법적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지킬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법을 어긴 관리들은 합당한 법적 처벌을 받는가? 그런 불법 행위를 방조한 관리들조차 법의 심판을 받는가? 그리고 일반 국민과 기업가들은 행정 권력자의 개입이 아닌,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자신의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절차적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은 모두 사회 발전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필요 조건들입니다.

동시에, 경제적 요소들이 원활히 순환되기 위해서는 건전하고 완전한 자본시장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아직 건전하고 완전한 자본시장을 갖추지 못했고, 이로 인해 개인 소비가 GDP의 40%에 불과한 반면, 저축률은 50%에 육박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수치는 자원이 충분히 효과적으로 순환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가 초기 산업 발전 이후 중간 조정 단계에서 겪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어떤 국가는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넘어서기도 했고, 어떤 국가는 이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참혹한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대가를 치른 뒤에야 겨우 탈출했습니다. 또 어떤 국가는 여전히 이 과정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이 국면을 돌파해야 할까요? 중국은 시장경제의 공통된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 전통이 부여한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중국식 현대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결국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지속적인 수정·보완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도 복사해서 쓸 수 있는 현대화 공식은 없습니다.

개혁·개방 초기로 돌아가 보면, 덩샤오핑은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며, 결국 성패는 결과가 말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돌다리를 두드려가며 강을 건너라’며 정해진 규칙 없이 끊임없이 탐색하고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현 단계에서는 아무리 높은 수준의 정책이라도 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실천 속에서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천의 최고 성과 지표(KPI)는 무엇일까요? 바로 진정한 의미의 현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진정한 현대화란 중국이 외부의 인위적 자극이 아니라, 스스로의 유기적이고 자생적인 힘만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만들어내는 상태를 말합니다. 유기적·자생적·지속 가능한 성장이 궁극적인 KPI인 셈입니다.

이때 가장 큰 성장 동력은 GDP에서 개인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에서 나옵니다. 이 비중이야말로 가장 유기적이고, 자생적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원천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하고, 영속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지속 가능한 것은 오직 사람들의 끊임없는 욕구와 새로운 수요의 창출뿐입니다. 이 욕구는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본능적이며, 시장경제에서 무한한 성장의 원천이 됩니다. 현재 중국의 개인 소비는 GDP의 40%에 불과하지만, 50%에 이르는 높은 저축률은 새로운 성장의 연료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이 저축은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제품, 새로운 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져 경제를 다시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최고의 기업가와 최고의 엔지니어, 세계 최대의 통합된 수요·공급 시장, 그리고 신용 시스템에 기반한 글로벌 전문 투자 기관을 유치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은 중국이 유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집니다.

반면, 인도의 개인 소비는 GDP의 60%를 차지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비중이 70%를 넘습니다. 미국 역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이런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성장이 지속 가능해질 것이지만, 아직 이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지점이 현재 중국이 직면한 과제이자 동시에 중요한 기회입니다.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국면에서 경제 성장의 불씨를 다시 지피려면, 중국은 출발점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영역을 동시에 잡으려 한다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방식으로는 돌파구를 만들기 어려운 만큼, 중국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돌파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디에 집중해야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요?

경제는 서로 연결된 수많은 고리로 이루어진 사슬과 같습니다. 이 사슬에는 기업가 정신, 소비자 신뢰, 관료 조직의 동기 부여 시스템, 외국 자본의 신뢰, 미·중 관계 개선, 국제 무역 환경 변화, 홍콩 자본시장 활용 및 독립성 보장과 활력 회복 등 수많은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이 모든 고리들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중국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모든 고리가 ‘닭’이기도 하고 ‘달걀’이기도 하며, 어느 고리든 다시 ‘달걀’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하나의 고리라도 자극을 주면 전체 경제 사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고리가 꺼져 있고, 전체 사슬이 멈춰 서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중국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딜레마입니다.

하지만 2024년 9월부터 중국의 정책 기조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인내를 이어간다면, 결국 경제 사슬의 어느 한 고리가 다시 점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고리가 점화되면 나머지 고리들도 연쇄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제 사슬을 이루는 모든 고리들은 서로 맞물려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고, 각각이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 ‘닭’이자 ‘달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굳이 한 방향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국처럼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에서는, 환경만 어느 정도 유연하고 완화되면, 뜻밖의 계기에서 큰 돌파구가 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혁개방 초기에 수십 명의 농민들이 ‘가정 연합 생산책임제’를 도입하기로 혈서를 썼던 단순한 사건이, 중국의 40년 대개혁의 서막을 열 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이 작은 조치로 중국은 1년 만에,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심천 경제특구에서의 개혁 실험도 전국적인 개혁의 불씨가 되어, 수십 년 묵은 난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변화는 반드시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애초에 그렇게 계획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만큼 크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잠재력은 여전히 막대하며, 지금 중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 도약기를 거친 모든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과정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농업 문명 시기, 혹은 그 이전부터 형성된 사회의 뿌리 깊은 가치관과 믿음이, 경제의 급격한 성장과 복합화로 인한 현실과 괴리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 괴리의 맥락에서 과거의 관념들을 다시 점검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실증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리콴유(Lee Kuan Yew) 전 싱가포르 총리의 접근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즉, 효과가 입증된 것은 과감히 반복하고, 실패한 것은 철저히 피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동시에 매우 깊은 통치의 원칙입니다. 결국 중국도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기준’이라는 원칙을 끝까지 견지해야 하며,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결과로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검증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발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 과제는, 중국 경제의 ‘유기적이고 자생적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 변수는 개인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현재 40% 수준인 이 비중을 인도의 60%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중국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 측면에서 막대한 발전 공간과 가능성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경제 사슬의 다양한 요소들을 다시 점화하고, 활성화하며, 연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사슬에는 기업가, 소비자, 유능한 정부 관료, 외국 자본, 투자자, 신뢰를 갖춘 전문 기관들뿐만 아니라 미·중 관계, 중·유럽 관계,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관계, 중국과 기타 모든 무역 파트너들과의 관계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모두 ‘닭’이자 동시에 ‘알’이며, 모두 ‘알을 낳는 닭’입니다. 어느 하나의 요소라도 점화된다면, 전체 사슬이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문제는 전체 사슬이 비교적 정적인 상태로, 아직 움직이기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앞서 말씀드린 중국이 받은 특별한 선물인 홍콩도 포함됩니다. 이는 과거 네덜란드가 영국에 주었던 선물과 맞먹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시장이 만들어내는 신뢰의 시스템은 국가가 통제하는 은행 시스템으로는 제공할 수 없는 것이며, 은행이 맡아서는 안 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은행은 위험 투자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은행이 위험 투자를 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에 안심하고 돈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결국 은행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엔비디아(NVIDIA)와 같은 공개 상장 기업들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대 자본시장 덕분입니다. 현대 자본시장은 신뢰를 갖춘 중개 기관들을 통해 개인들의 작은 저축을 자본으로 모아냅니다. 이 시스템은 법적 시스템, 모범 관행, 분쟁 해결 메커니즘, 역사적 관행, 오랜 기간 축적된 신뢰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이러한 현대 금융시장 시스템의 모든 요소를 갖춘 곳은 오직 홍콩의 자본시장뿐입니다. 만약 시장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시장은 결코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과거 선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특구로서의 독립성을 보장받았기 때문입니다. 홍콩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본시장과 법률 영역에서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신용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지만, 단 몇 번의 행동으로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홍콩의 시장과 시스템은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야 하며, 그 전제로는 먼저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출처 : https://www.himcap.com/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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