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높은 상속세를 꼽는다. 근데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속세만이 문제일까?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이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다른 선진국 시장 대비 유독 한국 시장만 저평가받는다.’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많은 전문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높은 상속세를 꼽는데,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으로 나타난 결과이지, 단 한 가지의 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상속세 역시 일정 부분의 연관이 있지만, 상속세만 낮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상속세와 디스카운트의 연관성
높은 상속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A 기업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은데, A 기업의 기업 가치가 높게 올라가면 상속세가 높아진다. 이에 따라 아들에게 넘겨주기 전에 A 기업의 주가 가치를 낮춰서 상속세를 절세한다. 이러면 기업 가치와 실제 가격에 괴리가 생기므로 디스카운트의 한 가지 요인이 된다. 다만 항상 상속하는 것도 아니고, 상속하는 주된 이유가 경영권 세습이기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주된 요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 상속세와 경영권 세습은 다른 문제이며, 이사회 구조와도 연관성이 있다.
주주 환원과 고용 유연성
대표적인 금융 선진국인 미국 기업들을 보면 벌어드린 이익에서 높은 비율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한다. 반대로 한국의 기업들은 다른 여타 국가의 기업들과 비교해 봤을 때 낮은 비율에 배당금을 지급한다. 낮은 비율에 배당을 주는 이유 역시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지만, 낮은 고용 유연성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이익은 총매출에서 총비용을 차감한 값이며, 기업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총비용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이다. 예를 들어 불특정 변수에 의하여 기업의 총 매출이 떨어진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기업 입장에선 비용을 줄여 이익을 방어해야 하므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근데 고용 유연성이 낮은 경우 쉽게 해고하기 어렵다. 그럼 다른 부분에서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문제는 다른 부분(설비, 광고 등)에서 비용을 줄이면, 매출에 큰 타격을 주므로 쉽게 줄일 수 없다. 이에 따라 기업은 훗날 발생할 위기에 대비하여 자연스레 기업 계좌의 자금을 비축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국같이 지정학적 위치가 애매한 국가들-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 또는 기업-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
‘고용 유연성만 확보하면 이 문제는 해결이냐?’라고 볼 순 없다. 고용 유연성만 확보한다면, 인건비만 줄이고 주주 환원은 하지 않아, 기업 계좌의 자금만 더 두둑이 챙겨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 유연성 확보와 함께 장기 거치 자금에 대한 세금 징수 제도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 보호 제도와 같은 안전장치를 확립하여 해결해야 한다.
지배구조와 이사회
이사회의 역할은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경영진을 감독하거나, 지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삼권분립(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처럼 서로의 견제를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사회의 존재 이유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의 이사회는 대주주에게 끌려다니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구조와 이사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끌려다니는 이사회의 문제는 경영권 세습과도 연관성이 있다. 재벌 기업 문화이다 보니 어느새 경영권 세습은 당연한 일로 되어 왔다. 물론 오너 일가의 기업 운영 마인드가 이어져 어느 관점에서 봤을 때 경영권 세습은 기업 가치에 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맥락 없이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경영권 세습은 기업뿐만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벌 기업 문화로 성장해 온 한국이기 때문에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은 손 쓰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보다 더 투명한 이사회 구축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물적분할 후 상장
물적분할은 100% 지분을 보유한 채로 분할하는 수직분할을 의미한다. 100% 지분을 가짐과 동시에 사업부를 분리하여 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다만 추가적인 자본 유입이 없다. 따라서 대주주들은 물적분할 후 상장하여 지배권을 지키면서도 추가 자본 유입을 얻는다. 한국 증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부분 대기업이 이러한 방법으로 상장해 왔다.
물적분할 후 상장은 대주주 입장에서 봤을 때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소액 주주 입장에서 봤을 때 황당한 일이다. 예를 들어 A 기업의 B 사업부를 보고 투자했는데, A 기업이 B 사업부를 물적분할하고 시장에 상장하면, 자연스레 A 기업의 B 사업부에 대한 지분이 하락한다. 대주주 입장에서 봤을 땐 지배권도 유지하면서 추가 자본 유입을 얻는 기회이지만, 소액 주주 입장에서 봤을 땐 단지 지분이 희석되어 기업 가치만 하락한 것이다.
물론 선진 시장도 물적분할 후 상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것은 주주들과의 이해관계가 맞았을 때이다. 단편적인 예시로 인텔을 보자. 인텔은 모빌아이를 물적분할 후 상장했다. 그 당시 인텔 상황을 보면, 파운드리 사업에 메이저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현황에서 모빌아이 상장을 반대하는 주주가 있었을까? 소수의 주주는 반대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주주는 이에 대해 찬성할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배당도 줄이고, 모빌아이도 물적분할 후 상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식 가격의 하락 폭은 크지 않았다.
반대로 한국의 물적분할 후 상장은 소액주주의 의견은 무시한 채 대주주의 입맛대로 움직인다. 대표적인 예시로 LG 화학의 물적분할 후 상장, 카카오의 물적분할 후 상장이 있다. 이러한 시장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가 몇이나 될까? 이 또한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증권 시장 이해도
정부의 세금 징수 구조만 봐도 정부의 증권 시장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양도소득세가 있다. 증권 시장이 고도화된 국가들은 장기간 보유한 자산에 대해서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여 세금을 책정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런 것들을 감안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징수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주주들의 세금 회피 때문이라 전하지만, 이런 식의 무차별적인 양도소득세는 장기 투자를 억제하고 단기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장기 투자자가 많아질수록 증권 시장의 안정성은 더 단단해진다. 그런데 누가 이런 시장에 장기 투자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 예시 말고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요인은 더 많을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서로 의견을 조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위해서 양보하는 모습이 나와야 할 텐데 이념과 사상의 간극이 큰 한국에선 쉬울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