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인한 수자원 부족, 토양 황폐화 등 곡물 공급의 안정성은 점차 떨어져 가는데, 지구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곡물의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기업 단에서 곡물 산업을 추진하고, 식량 안보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식량 안보가 왜 중요한가?
향후 기후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곡물 공급량은 줄어들 것이고, 나이지리아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의 인구 증가율이 높아질수록 곡물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이에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육류 섭취는 증가하고 있는데, 육류는 우리가 주식으로 곡물을 섭취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곡물이 필요하다.
- 곡물의 수요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급격히 증가할 수 있으며, 곡물의 공급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
곡물 공급량이 줄어들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한다면, 곡물 생산 국가들은 자국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곡물 가격이 급상승하였을 때 약 27개의 국가가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곡물은 가격이 비싸고 말고 할 것 없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은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국가의 하나로 곡물 가격 상승에 대한 피해를 그대로 입는 국가다. 두 국가의 경제 규모는 큰 편에 속하므로 일정 이상의 가격 상승은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 자체가 안된다면 이는 가격과 다른 문제로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다른 국가보다 곡물 공급망 체계에 적극적으로 침투하여 자국의 식량 공급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은 일본 내 5대 종합상사 내세워 2009년경부터 곡물 산업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 곡창지대 곡물 업체와 협력하고, 곡물을 유통할 수 있는 유통망을 확보하면서 최근에는 곡물 메이저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은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750억 원대 예산을 투입하여 해외곡물조달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4대 곡물 메이저에 밀려 곡물 엘리베이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사업은 청산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투자는 없는 상태이다.
4대 곡물 메이저
전 세계 곡물 공급 산업은 4개의 기업이 시장 규모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독점 산업이다. 이들은 ABCD, 4대 메이저, 곡물 공룡 등으로 불린다.
- A :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ADM)
- B : 번지 글로벌 (Bunge Global)
- C : 카길 (Cargill)
- D : 루이스 드레피스 (Louis Dreyfus)
카길과 루이스 드레피스는 비상장 기업이다.
곡물 엘리베이터
곡물 공급 산업의 핵심은 곡물 엘리베이터에 있으며, 4대 곡물 메이저의 점유율이 공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곡물을 유통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농가로부터 곡물을 구매하고, 저장한 후 이를 가공하고, 운송 수단에 실어 판매하는 모든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곡물 공급 산업에 침투하기 위해선 곡물 엘리베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곡물 엘리베이터는 4대 곡물 메이저가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시장에 나온 곡물 엘리베이터를 미리 확보하여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들의 농업 관련한 정보 능력은 국가정보기관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러한 이유로 곡물 엘리베이터 신규 건설 방안을 고려하지만, 곡물 엘리베이터는 건설 비용부터 부대 비용까지 높은 초기 자금이 필요한 장비이다. 이에 더불어 곡물 공급 및 관리 사업은 장비 사업이기도 하지만, 다량의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필요한 사업이기도 하다. 즉, 곡물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해서 사업이 물 흐르듯 흘러가지 않는다. 따라서 신규 사업자 입장에선 곡물 엘리베이터 신규 건설보단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방면이 더 효용성이 높다.
다만 앞서 말했듯 시장에 나오는 대다수의 매물은 대부분 4대 곡물 메이저가 가져간다. 이러한 이유로 신규 사업자가 이 시장에 진입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크라이나 재건
한국농어민신문 기사에 따르면 사실상 미국 내 곡물 엘리베이터 확보는 어려우므로 우크라이나 재건에 도움을 주고, 이를 통해 곡물 조달 우선권과 우크라이나 내 곡물 엘리베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전한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곡물 엘리베이터 가격이 미국만큼 비싸진 않음과 동시에 비옥한 토양을 기반으로 한 곡창지대가 있는 국가이다. 따라서 기사의 내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낮은 금액으로 곡물 공급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식량 안보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렇게 될 가능성인 낮다고 보인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한국은 애초에 우크라이나와 많은 접점이 없을뿐더러 타 국가 대비 전쟁 관련 지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를 가장 많이 지원해 준 국가는 미국과 유럽이며, 4대 곡물 메이저 기업은 미국과 유럽의 기업이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관리하던 기업은 4대 곡물 메이저였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는 다시금 4대 곡물 메이저의 손아귀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한국도 지원했지만,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큰 지원은 아니었다. 일본이라면 모를까 (일본도 우크라이나에 적지 않은 지원을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기업들이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에 접근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두 번째 4대 곡물 메이저의 공급망 관리 체계는 한국이 침투하기엔 너무 단단하다. 4대 곡물 메이저는 세계 곡물 공급망을 오랫동안 장악해 왔으며, 그들의 정보력과 네트워크는 다른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더 나아가 그들의 공급망은 미국과 유럽의 유리하게 작용하므로 반독점법을 기반으로 한 기업 분할도 기대하기 어렵다. (설사 분할하려고 해도 명분도 없거니와, 유대인의 로비 문화 때문에 더더욱 가능성이 없다.) 이러한 철옹성을 뚫고 한국이 이 시장에 순탄히 진입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일본은 어떻게 했는가?
그런 폐쇄적인 공급망 체계에서 자리 잡은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이 한국에도 답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4대 곡물 메이저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합작하거나 협력하는 방식을 취했다. 예를 들어 미쓰이 상사는 카길과 협력하여 곡물 수출 시설에 투자했고, 이토추 상사는 루이 드레퓌스와 곡물 및 식품 관련 사업을 확장했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재건에 일본이 했던 방식으로 4대 곡물 메이저에 접근한다면, 분명 우크라이나 재건은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식량은 생존 자원이며, 세계는 다극화되어 가고 있다. 정부와 기업단에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식량 공급망은 지금보다 더 안정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