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 홀럽은 지속해서 전 세계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 주장이 타당한지 여러 요인을 살펴보자.
- 아래 내용은 필자가 본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놓은 자료이다. 다만 필자는 옥시덴탈에 투자하고 있으므로 내용이 다소 편협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고지한다.
비키 홀럽의 공급 부족 경고
비키 홀럽은 현재 생산되는 원유의 약 97%가 20세기에 발견된 유전에서 나오고 있다고 강조하며,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신규 대형 유전 발견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몇 년 안에 공급이 매우 부족해질 것이며, 2025년 이후 WTI 유가가 배럴당 80-85불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참고 문헌 : 美 석유 생산 정점 경고 ‘비키 홀럽(옥시데탈 페트롤리움)’
20세기 유전에 의존하는 글로벌 공급
홀럽의 주장대로 현재 가동 중인 유전의 대부분이 20세기에 발견된 것인지는 여러 데이터로 뒷받침된다. 실제로 전 세계 주요 유전들의 발견 시기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Ghawar, 1948년), 쿠웨이트의 부르간(Burgan, 1938년), UAE의 자키움(Zakum, 1964년) 등 초거대 유전들의 상당수가 20세기 중반에 발견되었다. 이런 오래된 유전들은 이미 생산 피크를 지나 하락세에 접어든 곳이 많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원유 탐사 성공률이 크게 악화되었다. 단편적인 예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에서 새로 발견된 석유 자원은 약 24억 배럴로 1940년대 이후 최저치였다. 이는 2000년대 중반까지 연평균 90억 배럴씩 신규 발견되던 것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이다.
민간 분석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확인매장량 대비 생산량의 보충 비율(RRR)은 15~20% 수준까지 떨어져 왔는데, 2023년의 경우 약 16% 수준(생산 6배 대비 1배 보충)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최근 1년간 생산한 원유의 약 6분의 1만큼만 새로운 매장량으로 대체되고, 나머지는 보충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홀럽이 언급한 ‘지난 10년간 생산량의 절반도 채웠지 못했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또한 신규 유전 개발 연도 분포를 보면, 21세기에 들어 발견된 주요 유전들은 브라질의 해상 프레살(pre-salt) 층이나 최근 가이아나 해상 유전(2015년 이후 발견) 등 일부를 제외하면 규모 면에서 과거의 거대 유전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원유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유전들은 나이가 40-70년 이상 된 상태이며, 생산량 감소 추세에 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글로벌 석유 매장량은 생산량만큼 보충되지 못해 순감소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홀럽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며, 이는 전 세계 원유 발견 추이와 기존 유전의 노후화 데이터로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공급과 수요의 시소게임
장기간 낮은 투자로 유전 발견 건수와 새로운 프로젝트 승인량이 감소하여, 앞서 말했던 것처럼 생산량 대비 신규 매장량 보충률이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결과 기존 유전의 자연 감산을 상쇄할 개발이 부족해 미래 공급이 타이트해질 우려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존 유전은 매년 4-6%씩 자연 감산되므로, 세계적으로 매년 약 500만 배럴/일 이상의 신규 공급을 투입해야 현상 유지가 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신규 프로젝트로 늘어난 생산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해 공급 잠재력에 갭이 생기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자와 정책 입김도 화석연료 투자 축소 요인이다.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는 환경단체와 일부 정책 방향 때문에, 특히 서구의 민간 자본이 석유 개발 프로젝트에서 이탈하거나 금융 조달이 어려워지는 현상이 있었다. 예를 들어 IEA는 2021년 Net Zero 보고서에서 2050 넷제로를 위해 신규 유전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ExxonMobil은 ‘지나친 주장이 정책에 반영되면 에너지 안보에 위험’이라고 경고하며, 실제 일부 정책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짐이 있다고 비판했다.
ESG 투자 기준 강화로 석유회사가 자본조달을 주저하거나 장기 프로젝트 대신 주주 가치 극대화를 택하면서, 공급 능력 확대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탄소중립 정책으로 석유 수요가 곧 줄 것이라는 전망이 업계에 퍼지면서, 장기 프로젝트(예: 10년 이상 걸리는 심해유전 개발)에 대한 선뜻 투자가 줄어드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두 공급자 측 투자 부족으로 연결되어 향후 구조적 공급 부족 가능성을 높인다.
나아가 201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셰일오일 붐으로, 전통적인 대형 유전 탐사보다 단기간에 생산할 수 있는 셰일 자원 개발에 집중하면서, 신규 대형 유전 탐사가 줄어들었다. 셰일오일은 초기 생산은 빠르지만, 개별 유정의 수명이 짧아 장기적인 공급 기반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각종 기관은 전 세계 석유 수요가 당장 급감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공급 측면에서는 투자 부진으로 인한 잠재적 부족, 수요 측면에서는 에너지 전환이 생각만큼 빠르지 않아 당분간 높은 수요 지속이라는 두 가지를 근거로 향후 원유 공급 부족과 유가 상승 가능성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옥시덴탈 지분을 대거 매입한 것도 향후 석유 시장 강세에 대한 기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고인이 된 찰리멍거도 옥시덴탈을 좋아했다.)
2023년 오일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메이저 오일 기업들은 퍼마인 분지에서 활동하는 셰일 오일 기업을 대거 인수했다. 이는 다른 석유 기업들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조율
투자 부족과 에너지전환의 과도기적 불균형(수요-공급 미스매치),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향후 몇 년 내 원유 공급 부족과 유가 상승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석유업계와 에너지 당국 모두 안정적 투자와 공급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OPEC은 2050년까지 17.4조 달러의 석유 부문 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며, ‘모든 이해관계자가 장기 투자 친화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공급 부족과 가격 변동성에 대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수요 감소에 맞춰질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두 과제를 어떻게 균형 있게 풀어갈지가 글로벌 석유 업계와 정책 입안자들의 숙제라고 볼 수 있다.
- 정리하다 보니 공급 이슈에 치중되어 ‘석유 가격은 무조건 상승한다’라는 주장으로 흘러 가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반대논리는 생각보다 많다. 단지 필자가 편협한 생각으론 제시된 반대논리보다 앞서 언급된 논리가 더 타당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이 점 유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