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대다수 반도체 기업들은 업황이 개선되면서 나아갔지만, 인텔은 경쟁자들에게 하나씩 점유율을 내어주며 무너져갔다. 인텔은 다시금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
인텔의 흥망성쇠
인텔의 역사는 혁신과 성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성공이 방심으로 이어지면서 균열이 생긴 기업의 전형적인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1968년 설립된 인텔은 초기에는 실리콘 기반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선도해 나갔고, IBM PC의 CPU로 인텔 8088이 채택되면서 대중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후 펜티엄, 제온, 코어 시리즈 프로세서들을 통해 PC와 서버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며 거대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인텔의 성공은 주로 그들의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에서 비롯되었는데, 반도체 제조에서 규모의 경제는 절대적인 이점으로 작용한다. 대량 생산을 통해 제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고, 이러한 비용 절감은 인텔이 경쟁사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적 지위와 안정된 매출은 인텔 내부적으로 안일한 태도를 유발했다.
사업 다각화와 R&D 투자 축소, 그리고 과도한 성과급 지급은 인텔의 핵심 인재들을 지치게 했고, 그 결과 많은 인재들이 경쟁사인 AMD로 이탈하게 된다. AMD는 이를 기회로 삼아 라이젠(Ryzen) 시리즈를 출시하며, 인텔이 그동안 쌓아온 장벽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AMD의 라이젠은 성능과 가격 경쟁력에서 인텔을 추월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인텔의 시장 지배력이 점차 약화되기에 이르렀다.
인텔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2021년 구원 투수로 등장한 팻 겔싱어는 IDM 2.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겠다 선언한다. 자체 계발 프로세서 시장이 성장하고, 기존 팹리스 기업들의 경쟁이 심화된 지금 파운드리 사업은 골드러시 시기에 곡괭이를 판매하는 것과 같은 매력적인 사업이다. 이를 방증하듯 기존 파운드리 산업을 하던 TSMC는 투하 자본 지출이 매우 높은 첨단 제조업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영업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팹리스 기업이 내놓은 프로세서에 맞게 제품을 설계했으므로 파운드리 시장은 그리 재미있는 시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너도나도 자사의 커스텀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애플과 같은 팹리스 회사가 되려고 한다. 이에 따라 파운드리 시장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성장을 인텔이 무조건 공유할 것이라 예단하기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 2024년 9월 인텔은 지속적인 자금난으로 파운드리 분사를 고려하고 있다.(현실적으론 분사가 어려운 상태다.)
- 2024년 12월 CEO였던 팻 겔싱어가 사임했다.
칩셋의 다양성
일부 투자자들은 칩셋의 다양성보단 최신 공정에 초점을 맞추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칩셋의 다양성이다. 앞서 말했듯 이젠 기존 팹리스가 설계한 아키텍처가 아닌, 자사의 프로그램에 맞춰 자체적으로 아키텍처를 구상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글로벌한 파운드리 기업이 되기 위해선 다양한 구성의 칩셋을 제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부터 TSMC는 파운드리에 집중함으로서 다양한 기업의 칩을 제조해 왔고, 다양한 칩셋을 제조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반면 인텔의 파운드리는 인텔의 프로세서를 만드는 데 집중해 왔던 사업부이므로 인텔 자사 아키텍처에 집중되어 있다. 집적도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인텔이 삼성과 TSMC를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칩셋의 다양성이라는 벽은 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
반도체 사업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선 첫째도 규모, 둘째도 규모다. 다시 말해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다양한 고객사를 유치하여 칩셋을 제조하거나, 인텔이 설계한 프로세서가 더 많이 판매되어 더 많은 칩셋을 제조하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칩셋을 제조해야 한다. 다만 수요와 공급 측면 더 나아가 인텔이 가지고 있는 파운드리 역량을 생각해봤을 때 빠른 시기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긴 어려워 보인다.
- 인텔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규모의 경제가 ‘언제쯤 다시 살아날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미국의 지원
인텔이 미국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고 투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러한 배경에는 세계 정세 변화가 있다.
세계는 다극화로 가고 있고, 이에 따라 미국은 리쇼어링 정책을 1순위에 두고 있다. 과거 미국은 냉전 이후 자기 입맛에 맞게 공급망을 설계했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자국 내에서 하고,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산업은 다른 국가에 이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저렴한 부품들을 수입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탈바꿈하여 막대한 부를 얻었다. 다른 국가들 역시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었으므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설계에 대한 큰 반발은 없었다.
그러나 세계의 공장으로 사용되던 중국이 커지면서 미국과 같은 기축 통화국이 되기 위한 야욕을 내보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과거 소련이었던 러시아가 구소련의 영토를 되찾고 글로벌 리더로 다시 발돋움하겠다는 야욕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세계 정치의 양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들을 제외한 새로운 공급망 설계함으로써 직접이면서도 간접적인 견제를 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제조업 기반 시설이 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는 점이었다. 전쟁 가능성은 미미하지만, 중국 역시 러시아만큼이나 옛 영토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워 아시아 지역에 있는 첨단 제조업 기술과 설비를 얻기 위한 야욕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이 다른 제조업 국가를 강제 점령하여 첨단 기술력을 얻는 시나리오를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반도체와 같은 첨단제조업은 미국 내에서 운영하기 위해 IRA 법안을 내세워 리쇼어링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텔은 미국의 적지 않은 지원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고, 실제로도 인텔은 미국 정부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고 있다. 다만 미국의 지원을 기준으로 인텔에 투자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일이다.
반도체 산업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막대한 돈이 있다고 해서 만사 해결되는 산업은 아니다. 다양한 노하우들과 훌륭한 인적 자본을 갖추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제품이 시장에 인정받아, 다수의 고객사가 생겨야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이다. 즉, 소위 말해 아무리 돈을 때려 박아도 노하우가 없으면 안 되는 산업이며, 인텔이 접근하는 시장(파운드리)의 노하우는 인텔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지원을 기준으로 두는 것이 아닌, 파운드리 산업의 현황과 인텔의 행보를 기준으로 두어야 한다.
필자는 이전처럼 인텔이 글로벌 1위 종합 반도체 기업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원래 수준에 이익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더 나아가 워낙 투자가 많이 필요한 산업이다 보니, 원래 수준에 이익이 돌아오더라도 실질적인 이익(오너 어닝)은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따라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안전마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저평가되어 시세차익 투자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