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2023년까지 구글의 역사를정리한 문서이다. 구글에 관심이 있거나,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면 읽어보길 권장한다.
- 굵직한 사건으로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보려 했으나,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1996년 : 검색 엔진의 태동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1996년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 과정에서 웹 링크 구조를 활용한 검색 알고리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백럽(BackRub)’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며, 페이지와 브린은 스콧 하산 등의 도움을 받아 초기 검색 엔진 코드를 개발했다.
백럽은 웹 페이지의 백링크(다른 페이지가 해당 페이지를 링크하는 횟수)에 기반하여 페이지의 중요도를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실험했는데, 이것이 훗날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의 기반이 되었다. 이 혁신적인 접근법은 당시 다른 검색 엔진들과 차별화된 검색 결과의 품질을 보여주었고, 구글의 탄생을 예고했다.
1997년 : ‘Google’ 이름의 탄생
페이지와 브린은 백럽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방대한 웹 정보를 정리한다는 비전을 담아 ‘구글(Google)’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다. 이 이름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수학 용어 ‘구골(Googol)’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거대한 양의 정보를 처리하고자 하는 목표를 반영한다.
1997년 9월, google.com 도메인이 공식 등록되었다. 이는 연구 프로젝트였던 백럽이 본격적으로 웹 서비스로 나아갈 기반을 마련한 순간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 페이지와 브린은 링크 분석을 통한 검색 알고리즘을 고도화했고, 스탠퍼드 대학 내에서 구글 검색 엔진을 시험 운영하며 품질을 높여갔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이후 외부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1998년 : 구글 설립과 첫 발걸음
1998년 9월 4일, 구글 주식회사(Google Inc.)가 캘리포니아에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직전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으로부터 10만 달러 수표 투자를 받았는데, 당시 페이지와 브린은 아직 법인이 없어 이 수표를 현금화하지 못하다가 회사를 등록하며 자본금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회사 설립 후 첫 번째 사무실은 페이지와 브린의 친구였던 수전 워치츠키의 집 차고를 빌려 꾸렸다. 허름한 차고와 중고 컴퓨터 몇 대, 그리고 탁구대가 전부였지만, 이곳에서 초기 구글팀은 열정적인 스타트업 문화를 꽃피웠다. 수전 워치츠키는 이후 구글의 16번째 직원이 되었고, 훗날 유튜브 CEO를 역임하는 등 구글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구글 검색 엔진은 뛰어난 검색 품질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1998년 구글은 스탠퍼드 웹사이트를 통해 초기 버전을 공개했고, 빠른 속도와 정확한 결과로 인터넷 사용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구글’이라는 이름도 이때부터 점차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첫 번째 구글 두들(Doodle)을 선보였는데, 이는 공동 창업자들이 사내 홈페이지 로고에 버닝맨 페스티벌 참석을 알리기 위해 장난삼아 그린 그림으로, 훗날 구글의 독특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1999년 : 벤처 투자와 성장 가속
1999년 중반, 구글은 실리콘밸리 주요 벤처투자사들로부터 천만 달러 단위의 투자를 유치하며 본격적인 성장 자금을 확보했다. 특히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약 2,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을 떠나 팔로알토의 사무실로 확장 이전하고, 서버 인프라와 인재 채용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투자 유치 후 구글은 검색 인덱스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검색 알고리즘을 개선했다. 그 결과 구글은 검색 결과의 관련성과 속도 면에서 경쟁사들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예컨대, 1999년 말까지 구글은 하루 검색 질의 500천만 건 이상을 처리하며 급성장했는데, 이는 뛰어난 기술력과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성장세 속에 페이지와 브린은 경험 많은 경영인을 영입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회사 운영을 도와줄 어른의 지도(adult supervision)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듬해인 2000-2001년 본격화되어, 구글 역사상 중요한 경영 변화로 이어진다.
2000년 : 대중화와 첫 사업 모델 등장
야후가 자사의 검색 엔진 파트너로 구글을 채택하였다. 야후는 당시 세계 1위 포털이었는데, 2000년 중반부터 야후의 검색 결과 페이지 하단에 ‘Powered by Google’이라는 문구가 등장하며 구글의 기술력이 널리 알려졌다. 이로써 구글은 자체 사이트 트래픽뿐 아니라 파트너를 통한 간접 트래픽도 폭증하며, 사실상의 검색 엔진 1위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 10월, 구글은 최초의 온라인 광고 플랫폼 ‘구글 애드워즈(AdWords)’를 선보였다. 애드워즈는 검색 결과 페이지에 키워드 기반 텍스트 광고를 표시하는 서비스로, 광고주가 클릭당 비용을 지불하는 모델(PPC)을 도입했다. 이는 구글의 첫 수익 모델로서, 검색 엔진 운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다. 애드워즈 출시는 이후 구글이 광고 수익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핵심 비즈니스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2000년 구글은 검색 기능을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미지 검색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듬해 서비스를 준비했으며, 구글 툴바(웹 브라우저용 툴바)를 출시하여 사용자가 브라우저에서 바로 구글 검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은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구글 검색의 플랫폼 종속성을 줄이는 전략으로 진행되었다.
2001년 : 에릭 슈미트 CEO 영입
2001년, 페이지와 브린은 전 넷스케이프 CTO이자 노벨(Novell) 전 CEO였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를 회사에 합류시켰다. 슈미트는 2001년 3월 구글의 이사회 의장(회장)에 올랐고 곧 CEO직을 맡게 되었는데, 이는 ‘어른의 지도(adult supervision)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슈미트의 풍부한 경영 경험과 기술에 대한 이해는 성장하는 구글을 체계적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에릭 슈미트가 CEO를 맡으면서, 래리 페이지는 제품 총괄 사장으로, 세르게이 브린은 기술 총괄 사장으로 직함을 변경하여 각자 강점 분야에 집중했다. 세 명의 리더십 체제가 구축되었고, 이후 10년간 ‘래리-세르게이-슈미트’ 3명이 구글을 공동 운영하게 된다. 슈미트는 취임 후 회사 프로세스 정비, 조직 확대, 수익 극대화 전략 수립 등 경영 전반을 담당하며 구글의 기업 성숙도를 높였다.
7월에는 구글 이미지 검색 서비스가 공식 출시되어, 텍스트 뿐 아니라 이미지 콘텐츠도 검색 결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는 2000년 가수 제니퍼 로페즈의 그램미상 의상 이후 이미지 검색 요구가 폭증한 현상을 계기로 개발된 것으로, 첫날에만 2억5천만 개의 이미지 색인을 제공하며 호평을 받았다.
구글은 이 무렵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증하는 트래픽과 애드워즈 기반 광고 수익 모델이 자리잡으면서, 스타트업이었던 구글은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이는 벤처 투자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탈피하여 독자 생존이 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신호였다.
2002년 : 뉴스 서비스와 인수 제안의 해
2002년 9월, 구글은 자동 뉴스 수집 및 배열 서비스인 ‘구글 뉴스(Google News)’ 베타판을 공개했다. 이는 전 세계 뉴스 매체의 최신 기사들을 모아 주제별로 분류하고 제공하는 서비스로, 인공 지능 알고리즘이 편집을 맡는 점이 혁신적이었다. 구글 뉴스는 사용자들이 여러 소스를 쉽게 비교하도록 해주어 큰 호응을 얻었고, 온라인 뉴스 소비의 새로운 형태를 열었다. 언론사와의 저작권 문제 등의 논란도 있었지만, 구글은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조직화한다는 사명을 언론 영역으로도 확장했다.
한편, 구글의 성장에 놀란 경쟁사 야후는 2002년 초 구글을 인수하려는 제안을 했다. 야후는 약 30억 달러의 인수 금액을 제시했으나, 구글 측은 자사 가치가 최소 50억 달러는 된다며 이를 거절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이 인수 논의는 무산되었지만, 이는 구글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이 업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구글은 독자 노선을 고수하며 스스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야후는 몇 년 뒤 자체 검색 기술을 다시 개발하게 된다.
2002년 무렵부터 구글은 미국 외의 다국어 검색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언어로 구글 검색이 지원되기 시작했고, 각 지역에 맞는 검색 품질 향상에 투자했다. 또한 구글은 중국 시장에도 관심을 보여 중국어 서비스 개시를 모색했는데, 이는 훗날 중국에서의 사업 전개와 갈등의 전초가 되었다.
2003년 : 제품 다각화와 본사 이전
2003년 2월, 구글은 인기 블로그 서비스 ‘블로거(Blogger)’를 운영하던 파이라랩스(Pyra Labs)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구글은 급성장하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분야에 발을 들였고, 블로그 플랫폼을 무료로 제공하며 콘텐츠 생태계 장악을 노렸다. 구글 계정으로 블로거를 연동하고 검색에 블로그 글을 노출시키는 등의 시너지를 통해, 구글은 검색 엔진을 넘어 인터넷 서비스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다.
2003년 6월, ‘구글 애드센스(AdSense)’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애드센스는 웹사이트 운영자들이 자신의 사이트에 구글 광고를 게재하고 수익을 쉐어하는 플랫폼으로, 콘텐츠 연관 광고의 효시였다. 특히 같은 해 4월 인수한 애플라이드 세맨틱스(Applied Semantics)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맥락 광고 기능으로, 웹페이지 내용에 맞는 맞춤형 광고를 자동으로 보여주는 혁신을 선보였다. 애드센스의 등장은 개인 블로거부터 대형 콘텐츠 사이트까지 광범위한 웹 생태계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공했고, 구글의 광고 네트워크 지배력을 강화했다.
직원 수와 서버 인프라가 급증함에 따라 구글은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했다. 2003년, 회사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새 사무실 단지로 본사를 이전했는데, 이곳이 바로 유명한 ‘구글플렉스(Googleplex)’ 캠퍼스다. 마운틴뷰 본사는 열린 공간, 자유로운 업무 환경, 놀이시설 등이 갖춰진 독특한 기업 문화의 산실로 꾸며졌다. 이때부터 구글은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사옥 문화까지도 화제가 되었고, 전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드는 기반을 마련했다.
기술 측면에서는, 2003년 구글이 검색 색인 및 알고리즘에 ‘프레시니스(freshness)’ 개선을 도입하여 최신 콘텐츠를 더 빠르게 색인하고 검색 결과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중 언어 지원을 강화하고, 스팸 페이지를 걸러내는 ‘플로리다’ 알고리즘 업데이트를 단행하여 검색 품질 향상에 주력했다. 이는 검색 엔진 최적화(SEO)만을 노린 저품질 페이지를 제재해 사용자가 더 유용한 정보를 찾게 하려는 조치였고, 구글 검색 신뢰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4년 : IPO와 혁신 가속
2004년 8월 19일, 구글은 나스닥 시장에 주식을 상장하며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공모가는 주당 85달러로 책정되었고, 시초 시가총액은 약 230억 달러에 달했다. 상장 과정에서 구글 창업자들은 이례적으로 듀얼 클래스 주식 구조를 도입하여 경영권을 방어했고, 창업자 편지에서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적 선행을 추구하겠다’는 철학을 밝혀 주목받았다. ‘Don’t be evil(악해지지 말자)’라는 슬로건을 기업 문화로 내세운 것도 이 무렵 외부에 널리 알려져, 구글은 신생 기업이지만 이상주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2004년 4월 1일 만우절, 구글은 지메일 서비스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초대받은 사용자만 쓸 수 있는 베타 형태로 공개된 지메일은 무료 1GB 용량의 웹메일이라는 파격적인 제공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경쟁 메일 서비스들이 MB 수준의 용량을 제공한 것에 비해 지메일의 대용량은 사용자들에게 자유로운 이메일 사용을 가능케 했고, 대화형 인터페이스와 강력한 검색 기능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지메일 출시는 구글이 검색 외에도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는 신호탄이었다.
2004년 구글은 디지털 지도 서비스 개발을 위해 호주 시드니의 스타트업 웨어 2(Where 2) 테크놀로지와 공간정보 시각화 업체 키홀(Keyhole) 등을 인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2005년 초 구글 지도(Maps)와 구글 어스(Earth) 서비스를 선보이게 된다. 지도 서비스는 사용자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며, 이후 지역 광고와 모빌리티 등의 신사업으로 연계되었다.
이 해 1월에는 구글이 SNS 서비스 Orkut(오르컷)을 출시하여 소셜 네트워킹 붐에 동참했다. Orkut은 일부 국가(특히 브라질, 인도)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전세계적으로 페이스북 등의 경쟁사에 밀려 2014년 종료된다. 구글은 Orkut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여러 차례 소셜 진출을 모색하게 된다(구글+, 행아웃 등).
IPO로 자금을 확보한 구글은 2004년 전세계 곳곳에 지사를 설립하며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했다. 특히 한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시장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현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2004년 말 구글은 전세계 70여 개 언어로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게 되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검색엔진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 지도와 안드로이드
2005년 2월, 인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구글 지도(Google Maps) 서비스가 출시되었다. 이어 6월에는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을 공개하여, 위성지도와 항공사진을 이용한 3D 지구본 서비스를 선보였다. 구글 지도는 길찾기, 지역 검색 등으로 사용자 편의를 혁신했고, 지도 API 공개를 통해 수많은 위치 기반 응용이 탄생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는 구글이 현실 세계의 정보를 조직화하는 새로운 단계로 평가된다.
2005년 7월, 구글은 모바일 운영체제 스타트업 안드로이드(Android Inc.)를 극비리에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약 5천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구글 역사상 최고의 투자였다고 후일 평가되었다. 앤디 루빈이 이끄는 안드로이드 팀은 원래 카메라용 OS 등을 개발하던 소규모 회사였으나, 구글은 미래 모바일 인터넷 시장의 중요성을 내다보고 이들을 영입했다. 인수 후 루빈과 팀은 구글 내에서 오픈소스 스마트폰 운영체제 개발을 이어갔고, 훗날 안드로이드는 전세계 스마트폰의 대부분에 탑재되는 대성공을 거둔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검색과 서비스 생태계를 지배함으로써 모바일 시대에도 자사 플랫폼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2005년 구글은 또한 웹사이트 통계 분석 서비스 업체 얼친(Urchin)을 인수하여, 11월에 무료 웹 로그 분석 도구 구글 애널리틱스(Google Analytics)를 출시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 마케팅 및 웹마스터 커뮤니티에도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 밖에도 RSS 리더 서비스인 구글 리더, 인스턴트 메신저 구글 톡(Talk), 개발자 대상 코드 저장소인 구글 코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주력했다.
2005년 구글은 자선사업 부문인 구글.org를 출범시켰다. IPO 당시 약속한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설립된 구글.org는 기술을 활용한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빈곤퇴치, 공익 기술개발 등에 투자했다. 이는 구글이 단순 영리기업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지향함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악해지지 말자’는 모토의 실천적 측면으로 평가되었다.
2006년 : 유튜브 인수와 글로벌 확장
2006년 10월, 구글은 당시 급성장 중이던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16억 5천만 달러에 전격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구글 내부에도 비슷한 서비스인 ‘구글 비디오’가 있었으나 유튜브의 폭발적 인기를 따라잡지 못하자, 경쟁 서비스를 통째로 사들인 것이다. 이 거래의 배경에는 유튜브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핵심 플랫폼으로 부상하리라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실제로 유튜브는 인수 당시 서버 비용 폭증과 저작권 소송 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구글의 자본과 인프라, 법무 지원을 받으면서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으로 도약했다. 유튜브 인수는 구글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로 꼽히며, 이후 유튜브는 구글의 핵심 서비스이자 거대한 광고 수익원으로 성장한다.
2006년 1월, 구글은 중국용 검색 사이트 google.cn을 공식 개설하며 세계 최대 인터넷 인구를 가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다만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를 수용하여 일부 민감한 검색 결과를 걸러내는 자체 검열을 시행한 것이 논란을 불렀다. 구글 경영진은 ‘정보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제한적 검열을 감수한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이후 구글과 중국 정부의 갈등의 불씨가 된다. 2006년 당시 구글은 중국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현지 직원을 채용하고 서비스를 현지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으나, 배경에 깔린 가치관 차이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구글은 이 해 온라인 오피스 분야에도 진출하여, 3월에 웹 문서 편집기인 Writely(라이트리)를 인수하고 이를 발전시켜 구글 독스(Docs)의 기초로 삼았다. 또한 구글 캘린더(Calendar)를 4월에 출시하여 이메일(지메일)과 연계된 일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기업용 검색 솔루션인 Google Search Appliance를 업그레이드하고, 전자결제 서비스 구글 체크아웃(Checkout)도 발표하는 등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검색 회사를 넘어 종합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 변모해갔다.
유튜브 인수 등으로 직원 수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구글은 스타트업 문화와 대기업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2006년 구글에 합류한 인재 중에는 외부 유명 인사들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당시 애플의 이사회 멤버였던 에릭 슈미트 CEO는 애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구글과의 전략적 협력을 도모하기도 했다. 또한 회사는 사내 엔지니어들의 20% 자유 프로젝트 시간을 독려하여 Gmail, AdSense 등에 이어지는 혁신을 지속 추구했다. 구글의 기업 문화는 여전히 자율과 창의를 중시했지만,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체계적인 관리가 더해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2007년 : 모바일 시대 대비와 광고 제국 구축
2007년 11월, 구글은 드디어 자사가 개발 중이던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의 존재를 공식 발표했다. 구글은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pen Handset Alliance)를 결성하여 여러 휴대폰 제조사, 통신사와 손잡고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배포할 계획을 밝혔다. 이는 애플이 2007년 초 아이폰을 발표하며 모바일 생태계가 급변하던 상황에서, 개방형 플랫폼 전략으로 대응하려는 구글의 전략이었다. 안드로이드는 개발자와 제조사에 무료로 제공되고, 구글 검색과 서비스가 기본 내장됨으로써 모바일에서 구글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구글은 2007년 4월, 온라인 광고 업계의 거대 기업 더블클릭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31억 달러로, 당시 구글 최대 규모의 인수였다. 더블클릭은 배너광고 및 광고 네트워크 기술의 선도 업체였는데, 구글은 이를 통해 디스플레이 광고 시장까지 장악하려 했다. 이 인수는 경쟁사들과 규제당국의 우려를 불러일으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심사를 받았으나, 결국 2008년 승인되었다. 구글은 더블클릭 기술을 접목하여 광고주와 퍼블리셔를 아우르는 포괄적 온라인 광고 플랫폼을 구축했고, 이는 구글이 검색 광고뿐 아니라 그래픽 광고, 동영상 광고까지 지배력을 넓히는 토대가 되었다.
2007년 5월, 구글 지도에 거리 뷰 기능이 최초로 도입됐다. 미국 몇 개 도시의 거리 사진으로 시작한 거리 뷰는 특수 장착된 카메라 차량이 도로를 촬영해 360도 파노라마 거리사진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이를 통해 지도 사용자는 현장에 가지 않고도 거리를 생생히 둘러볼 수 있게 되었으며, 부동산, 관광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었다. 다만 이후 프라이버시 논란이 발생하여, 거리뷰 차량이 촬영 중 와이파이 데이터를 수집한 사실이 2010년 드러나 각국 정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2007년 서비스 시작 당시에는 혁신으로 찬사받았으나, 구글은 곧 개인정보 보호와 기술 혁신 사이의 딜레마를 체감하게 된다.
구글에 인수된 유튜브는 2007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인터넷 문화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동시에 저작권을 침해한 동영상 업로드에 대한 소송도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2007년 3월 미디어 기업 바이아컴(Viacom)은 유튜브에 대량의 저작권 침해 영상이 올라왔다며 구글을 상대로 1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법적 분쟁은 플랫폼의 책임에 대한 첫 시험대였으나, 구글은 고급 필터링 시스템과 권리자 관리도구(Content ID)를 마련하며 대응했다. 유튜브 소송은 2014년 구글의 승소로 마무리되어 구글이 법적 장애물을 넘었고, 이후 유튜브는 콘텐츠 업계와의 라이선스 협력을 강화하며 성장 가도를 이어갔다.
2007년 구글은 포춘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오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로 세간의 부러움을 샀다. 무료 급식, 휴식 공간, 20% 프로젝트 등으로 대변되는 구글의 문화는 실리콘밸리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만 직원 수가 수천 명 규모로 늘어나면서, 한편으로는 구글도 점차 대기업화에 따른 내부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에릭 슈미트는 이 시기 경영 효율화를 위해 프로젝트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일부 서비스(예시 : Answers 등)를 정리하는 결정도 내렸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구글이 혁신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반이 되었다.
2008년 : 크롬과 안드로이드 ‘플랫폼 주도권 경쟁’
2008년 9월, 구글은 자체 웹 브라우저인 구글 크롬을 전격 공개했다. 오픈소스 크로미움(Chromium)을 기반으로 개발된 크롬은 단순하고 빠른 브라우징을 표방하며 등장했다. 자바스크립트 엔진 V8의 우수한 성능과 탭 격리로 인한 안정성 등 기술 혁신으로 크롬은 출시 직후부터 호평을 받았다. 크롬의 출시는 인터넷 접속의 관문을 직접 장악하려는 구글의 전략으로 해석되며,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지배하던 브라우저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크롬은 점유율을 급격히 높여 불과 몇 년 만에 전 세계 1위 브라우저로 자리잡았고, 웹 표준과 웹 앱 생태계 발전에도 기여했다.
2008년 9월 말, 안드로이드 1.0 운영체제를 탑재한 최초의 상용 스마트폰 HTC 드림(또는 T-Mobile G1)이 발표되었다. 10월 출시된 이 기기는 쿼티 키보드와 터치스크린을 갖춘 형태로, 구글의 다양한 앱(Gmail, 지도 등)이 내장되어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의 양대 플랫폼 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구글은 모바일에서의 검색과 광고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안드로이드 폰 보급에 힘썼고, 제조사들에게 무료로 OS를 제공하는 개방 전략 덕분에 여러 업체가 잇따라 안드로이드 기기를 출시했다. 2008년은 비록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미미했으나 이후 폭발적 성장의 출발점이 되었다.
2008년 구글은 구글 앱 엔진(App Engine)을 선보여 개발자들이 구글의 서버 인프라에서 웹 애플리케이션을 호스팅할 수 있게 했다. 이는 AWS 등과 경쟁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의 시초로, 이후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GCP)으로 발전한다. 또한 구글은 데이터센터를 세계 각지에 확충하며 유튜브, 지도, 지메일 등 폭증하는 서비스 트래픽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인프라 투자는 구글이 기술 인프라 기업으로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했다.
2008년 5월에는 구글이 구글 건강(Google Health) 베타 서비스를 출시하여 개인 건강기록 플랫폼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다만 프라이버시 우려 등으로 2011년 중단). 그리고 같은 해 안드로이드 마켓(훗날 플레이스토어)을 열어 앱 유통을 시작했고, Lively라는 가상세계 서비스도 시도했으나 큰 성과 없이 종료했다. 이처럼 구글은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며 여러 분야로 서비스를 실험적으로 확장하는 한 해를 보냈다.
크롬 출시로 브라우저 사용 데이터가 구글로 더 많이 유입되고,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데이터까지 확보함에 따라, 구글의 사용자 데이터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관심과 우려도 높아졌다. 예컨대, 2008년 EU 당국은 구글의 데이터 보존 기간 등에 관해 질의하며 프라이버시 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사용자 편의를 위한 데이터 활용’을 주장하면서도, 프라이버시 보호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혀야 했다. 이러한 데이터 규제 이슈는 향후 구글이 끊임없이 직면하는 도전 과제가 된다.
2009년 : 소셜과 실험
2009년 5월, 구글은 차세대 소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구글 웨이브를 공개했다.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징, 위키를 통합한 혁신적 실시간 협업 플랫폼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복잡한 인터페이스와 명확하지 않은 사용처 등으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웨이브는 2010년 개발 중단이 결정되어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 경험은 구글이 소셜 네트워크 분야의 이해 부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소셜 전략(구글+ 등)에 참고가 되었다.
2009년 3월, 구글은 전화 서비스 그랜드센트럴을 인수해 구글 보이스를 출시했다. 하나의 번호로 통합 착신, 음성사서함 전사 등 통신 편의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이는 구글이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 사업을 넓힌 사례로, 후일 기업용 G Suite (지금의 Google Workspace)의 일부로 통합된다.
2004년 시작한 구글 북스(Google Books) 도서 스캔 프로젝트가 2009년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구글은 전세계 수많은 장서들을 디지털화하며 검색 가능한 도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는데, 이에 대해 저작권 단체와 작가들이 반발하여 집단소송을 벌였다. 2008년 구글은 미국 저작권자들과 1억 2500만 달러 규모의 합의안을 마련했으나 , 2009년 미 법무부와 여러 국가의 이의제기로 합의가 무산되었다. 결국 2011년 법원이 구글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며 구글 북스는 제한된 형태로 지속됐다. 이 과정은 기술과 저작권의 충돌이라는 상징적 사례로 남았다.
2009년 7월, 구글은 크롬 OS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PC 운영체제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크롬 OS는 크롬 브라우저 기반의 경량 OS로, 주로 웹 앱을 활용하는 클라우드 중심 컴퓨팅을 지향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1년 크롬북(Chromebook) 노트북 출시로 현실화되어, 교육 시장 등을 중심으로 크롬 OS 생태계가 형성된다. 2009년의 발표는 구글이 데스크톱 환경까지 포괄하는 풀스택 기술 기업으로 야망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식 발표는 없었으나, 2009년 구글 내부에서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는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지원 아래 2005년 DARPA 자동차 경진대회 우승자 출신의 기술자들을 영입해 진행되었다. 이후 2010년에 이 프로젝트가 대중에 공개되어 큰 화제가 되고, 구글의 ‘문샷’ 혁신을 상징하는 구글 X 연구조직의 대표 사례가 된다. 2009년은 이렇듯 공개/비공개로 구글이 미래 기술에 투자하며 향후 10년을 준비한 한 해였다.
2010년 : 중국과의 갈등
2010년 1월, 구글은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중국으로부터 자사 시스템에 대한 해킹 공격(일명 오로라 작전)을 받았으며,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검열 요구에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구글은 공식 블로그 포스트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접근(A new approach to China)에서 더 이상 google.cn에서 검열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검열 없는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의 중국 시장 철수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3월에는 구글이 중국어 검색 서비스를 홍콩 도메인으로 우회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 본토에서 구글 검색이 차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구글의 이러한 결단은 표현의 자유 대 시장 접근이라는 어려운 선택에서 전자를 택한 사례로 회자되며, 중국 정부와 실리콘밸리 기업 간 갈등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2010년 1월, 구글은 자사 브랜드를 건 첫 스마트폰 ‘넥서스 원(Nexus One)’을 출시했다. 대만 HTC가 제조하고 구글이 판매한 이 안드로이드 폰은 판매량은 기대에 못 미쳤으나, 구글이 하드웨어 레퍼런스 모델을 직접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넥서스 원을 시작으로 구글은 매년 넥서스 시리즈 폰을 선보이며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훗날 픽셀(Pixel) 폰으로 이어진다. 또한 2010년에는 안드로이드 마켓에 수많은 앱이 쏟아지며, 안드로이드 OS 버전도 진저브레드, 프로요 등의 업데이트를 통해 모바일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2010년 말 안드로이드는 전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에서 iOS를 추격하는 위치에 올랐다.
2010년 5월, 구글은 앞서 언급한 스트리트 뷰 차량이 사진 촬영 도중 와이파이 데이터까지 수집해왔음을 시인하여 파문이 일었다. 구글은 원래 거리뷰 차량에 주변 와이파이 네트워크의 공개 신호(SSID, MAC 주소)를 모아 위치 서비스를 향상하려 했는데, 실수로 개인정보 패킷(payload data)까지 수집했다는 것이다. 약 30개국에서 600GB 분량의 데이터가 수집된 것으로 드러나 각국 정부와 개인정보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구글은 즉각 차량 운행을 중단하고 외부 기관 감독 하에 데이터를 삭제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수로 그런 방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이 사건은 구글이 향후 프라이버시 이슈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경고였으며, 몇몇 국가에서는 벌금과 법적 합의로 이어졌다.
2010년 2월, 구글은 지메일 기반의 소셜 서비스 ‘구글 버즈(Buzz)’를 출시했다. 지메일 이용자 간 상태 업데이트와 링크 공유를 제공한 버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도전하는 서비스로 주목받았으나, 출시 직후 프라이버시 설정 문제가 불거졌다. 기본 설정상 사용자의 이메일 연락처 목록이 공개되는 등 설계 실수로 이용자 불만이 폭주했고, 결국 구글은 몇 주 만에 정책을 수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용자 신뢰를 잃은 버즈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2011년 종료됐다. 이는 구글이 소셜 네트워크 이해 부족으로 또 한 번 좌초한 사례였고, 이후 보다 철저한 준비를 거쳐 구글+를 내놓게 된다.
이 무렵 구글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10년 말부터 구글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비공식 개시했다. 경쟁사들은 구글이 검색 결과에서 자사 서비스(예를 들어 지도, 유튜브 등)를 우대하고 경쟁 서비스는 낮게 노출시킨다고 주장했다. 2011년에 공식화된 이 조사는 2013년까지 진행되어, 구글이 일부 사업 관행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종결되었다. 미국에 비해 엄격한 EU는 2010년 11월 구글에 대한 공식 반독점 조사에 착수하여, 이는 향후 2017년부터 막대한 과징금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은 구글에게 규제의 그림자가 본격 드리운 해로, 이후 수년간 법적 공방과 평판 리스크가 뒤따르게 된다.
2011년 : 경영진 교체와 소셜 네트워크 도전
2011년 4월, 에릭 슈미트가 10년간 이끌었던 구글의 CEO 자리를 래리 페이지가 다시 맡게 되었다. 슈미트는 ‘이제는 더 이상 어른의 지도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며 스스로 한발 물러났고 , 회장(Executive Chairman)으로서 대외 업무에 집중했다. 세르게이 브린은 특별 프로젝트와 연구개발(X Lab 등)에 주력하는 역할로 이동했다. 페이지의 CEO 복귀는 구글의 창업자 중심 경영이 10년 만에 재확립된 것으로, 보다 민첩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추진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페이지는 취임 직후 조직을 단순화하고, 제품별 수석부사장들을 임명하여 책임 경영을 강화했으며, 성과가 부족한 서비스들은 신속히 정리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보였다.
2011년 6월, 구글은 대대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구글+(구글 플러스)’를 출시하며 페이스북에 본격 도전했다. 구글+는 서클(친구 그룹), 행아웃(영상 채팅) 등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유튜브, 지메일 등 기존 구글 서비스와 연동을 내세워 초기 가입자가 단기간에 수천만 명을 돌파했다. 구글은 검색 결과에 구글+ 콘텐츠를 노출시키는 등 강력한 프로모션을 했지만, 정작 사용자 참여도와 체류시간이 낮아 ‘유령 도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소셜 총괄이던 빅 군도트라의 퇴사 후 구글+의 위상은 급격히 낮아졌고, 결국 2018년에 개인정보 노출 사고까지 겹치며 2019년 소비자 대상 서비스가 폐쇄되었다. 구글+의 부진은 구글이 소셜 그래프 장악에는 끝내 실패했음을 상징하며, 이후 구글은 소셜 대신 인공지능 같은 차세대 기술에 집중하게 된다.
2011년 8월, 구글은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약 125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파격적 결정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필요한 특허를 확보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경험을 축적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모토로라는 오랜 휴대폰 강자였으나 스마트폰 시대에 부진했고, 특히 17,000건 이상의 방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제조 파트너들을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특허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 특허 자산이 필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수 소식에 업계는 놀랐고, 삼성 등 파트너들은 구글이 직접 제조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며 경계했으나, 구글은 ‘모토로라도 동일하게 안드로이드 라이선스를 받을 것’이라고 진화했다. 인수 완료는 2012년 5월에 이루어졌으며, 이후 구글은 2년간 모토로라를 운영하다가 2014년 레노버에 매각하게 된다(핵심 특허는 구글이 유지). 이번 인수는 구글의 전략적 판단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건으로 남았다.
2011년 5월, 구글은 첫 크롬북(Chromebook) 노트북을 상용 출시했다. 삼성과 에이서에서 제조한 이 기기는 크롬 OS로 구동되며 거의 모든 작업을 웹앱으로 처리하는 컨셉이었다. 크롬북은 초기엔 성능 제약과 온라인 의존도 때문에 틈새제품에 머물렀으나, 점차 성능 개선과 G Suite와의 결합으로 교육 시장 등에서 인기를 얻어갔다. 이는 구글이 PC 하드웨어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으로, MS 윈도우 중심의 전통적 PC시장에 클라우드 기반의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1년 말, 구글은 미 FTC의 반독점 조사에 대응하여 일부 검색 비즈니스 관행을 자발적으로 수정하며 합의를 모색했다. 이 즈음 사생활 보호 논란으로, 구글 스트리트뷰 와이파이 사건에 대한 각국의 조사가 이어졌고, 구글 버즈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미 FTC와 구글 간에 20년간 프라이버시 감시 동의를 맺는 조치도 이루어졌다. 내부적으로는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라는 모토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이상과, 주주 가치를 극대화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2012년 : 구글 글래스와 미래 기술
2012년 4월,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이끌던 구글 X 연구소에서 증강현실(AR) 안경인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를 깜짝 공개했다. 안경처럼 착용하는 이 기기는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문자 메시지, 길안내 등을 눈앞에 표시하고 음성 명령으로 작동하는 최첨단 컨셉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2013년 개발자용 익스플로러 에디션이 배포되어 실사용 테스트가 시작됐지만, ‘프라이버시 우려(안경 착용자가 타인을 몰래 녹화 가능)’와 제한된 배터리/기능으로 혹평을 받았다. 결국 2015년 소비자 버전 출시 계획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구글은 글래스를 일반 판매 중단한 뒤 기업용 제품(Enterprise Edition) 위주로 방향을 전환했다. 구글 글래스는 구글의 혁신적 이미지를 각인시켰으나, 동시에 기술 도입 시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2012년 5월, 규제 당국 승인을 거쳐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절차가 완료되었다. 구글은 곧바로 모토로라 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직원의 20%를 감원하고 제품 라인업을 정리했다. 모토로라 인수 직후인 2012년 말에는 모토로라의 세트톱박스 사업부를 약 23억 달러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는 구글이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스마트폰 관련 특허와 기술이며, 부가 사업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같은 빠른 정리에도 불구하고,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 개선이나 안드로이드 생태계 시너지 창출은 기대에 못 미쳤고, 구글은 결국 2014년 대부분의 모토로라 사업을 레노버에 매각하는 결정을 내린다.
2012년 말, 2년 넘게 진행된 미국 FTC의 구글 반독점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013년 1월 공식 발표에 따르면, 구글은 자사 서비스 콘텐츠의 무단 크롤링 중단, 광고주 데이터 이동 허용 등 몇 가지 자율 시정 조치를 약속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FTC는 검색 결과 편집에 관한 부분에서는 구글에 법 위반이 없었다고 결론내렸지만, 일부 위원들의 반대 의견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비록 미국에서는 법적 제재를 피했으나, 거의 동시에 진행되던 EU 조사에서는 강경 대응이 예고되어 구글은 전방위로 대응을 준비해야 했다.
2012년 구글은 또 다른 법적 위기에 직면했는데, 바로 오라클(Oracle)과의 자바 API 저작권 소송이었다. 오라클은 안드로이드가 자바 API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2010년 소송을 제기했고, 2012년 1심에서 API 저작권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5월 배심은 구글이 오라클의 코드 일부를 복사한 것은 사실이라고 판단했지만, 해당 API가 저작권 보호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 이후 이 소송은 장기화되어 2018년까지 항소심, 상고심을 거듭했고, 결국 2021년 미 연방대법원이 구글의 손을 들어주며 끝났다. 이 사례는 소프트웨어 API의 저작권 문제를 다룬 중대한 판례로 남았다.
2012년 유튜브는 콘텐츠 ID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대형 음악/영화사들과 광고 수익 배분 협약을 체결하는 등 저작권 관리에 진전을 보였다. 또한 유튜브가 크리에이터 수익 창출 프로그램을 안착시킴에 따라, 전문 유튜버들이 등장하고 유튜브 생태계가 급성장했다. 그 결과 2012년 말 유튜브의 월 사용자가 8억 명을 넘어서며 (매 분 72시간 분량 동영상 업로드), 구글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이 과정에서 부적절 콘텐츠나 저작권 필터의 오류 등 새로운 과제들도 등장하여, 구글은 건전한 플랫폼 운영을 위한 정책 마련에 힘써야 했다.
2012년 구글은 사내 다양성(Diversity)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채용에서 여성 및 소수인종 비율을 높이기 위한 목표를 수립했다. 구글이 주도한 ‘Made with Code’와 같은 여성 코딩 장려 캠페인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직원 수는 이 해 5만 명을 돌파했고, 글로벌 조직으로 커진 구글은 초기 스타트업 문화와 대기업 문화의 조화를 모색해야 했다.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 X 프로젝트(무인 자동차, 글래스 등)에 집중하며 ’10배 혁신’을 독려했고, 래리 페이지는 사내 관료 주의 제거와 속도 중시를 강조했다. 이러한 문화적 실험은 앞으로 몇 년간 구글 내부에서 계속된다.
2013년 : 하드웨어와 인공지능
구글 산하의 모토로라 모빌리티는 2013년 8월 Moto X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이는 구글이 인수 후 처음 내놓은 모토로라 신제품으로, 사용자 음성인식 (‘Okay Google Now’) 기능 등 소프트웨어 최적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한편 구글은 2013년 7월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세트톱박스 사업을 ‘모토로라 홈(Motorola Home)’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여 앞서 언급한 대로 ARRIS에 매각 완료했다. 이는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지 1년 만에 핵심이 아닌 사업을 과감히 정리한 사례다.
2013년 6월, 구글은 이스라엘의 소셜 내비게이션 앱 웨이즈를 약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웨이즈는 운전자들이 실시간 교통정보를 공유하는 혁신적 앱으로, 페이스북 등도 인수를 검토하던 인기 스타트업이었다. 구글 지도 서비스와 중복되는 면이 있었지만, 구글은 경쟁자 유입 방지와 커뮤니티 기반 정보 수집 기술 확보 차원에서 인수를 결행했다는 분석이다. 웨이즈의 교통 데이터와 기능은 이후 구글 지도에 통합되어, 지도 품질 향상과 경쟁 우위 유지에 기여했다. 이 인수는 구글의 지도 및 위치 기반 서비스 절대우위 전략을 보여준다.
2013년 하반기, 구글은 로봇 공학 분야 스타트업들을 연달아 인수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특히 12월 인수한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군사용 및 거점 로봇으로 유명한 기업으로, 네 발 로봇 ‘빅독(BigDog)’ 등을 개발한 곳이다. 이밖에 산업용 로봇팔 제조사, 센서 기업 등 총 8개의 로봇 회사를 인수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안드로이드 창시자 앤디 루빈이 이끌었으며, 구글이 로봇 기술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루빈이 2014년 구글을 떠나며 이 계획은 동력을 잃었고, 구글은 2017년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재매각하는 등 로봇 사업에서 한발 물러났다. 2013년의 일련의 움직임은 구글의 문샷 도전 정신과 함께, 실행 과정의 어려움도 드러낸 사례로 남았다.
2013년 3월, 구글은 딥러닝(심층학습) 분야의 선구자인 제프리 힌튼 박사를 영입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영국의 AI 스타트업 딥마인드(DeepMind)에 전략적 투자를 했다(이듬해 2014년 완전 인수). 이로써 구글은 인공지능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힌튼 영입 직후 구글은 이미지 인식 등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신경망 시스템을 자사 제품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2013년은 빅데이터와 연산능력 발전에 힘입어 딥러닝 혁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구글은 이 흐름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여 AI를 검색 개선, 음성인식, 번역 등에 적극 활용했다. 이러한 투자 덕분에 2014년 구글 브레인 팀과 딥마인드 성과로 음성인식 오류율 감소, 사진 자동분류 등 혁신이 이어졌다.
2013년 6월, 미국 NSA의 대규모 인터넷 정보수집 활동(프리즘 프로그램)이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로 밝혀지면서, 구글을 비롯한 IT 기업들도 파장을 맞았다. 구글은 자신들은 정부의 법적 요구에 최소한으로 협조해왔을 뿐 무분별한 정보 제공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NSA가 구글과 야후 데이터센터 간 전송 데이터를 도청했다는 보도도 나오며 논란이 커졌다. 이에 구글은 데이터센터 간 트래픽 암호화를 급히 도입하는 등 사용자 데이터 보안 강화에 나섰다. 또한 투명성 리포트를 통해 정부 정보요청 건수를 공개하고, 이용자들에게 종단간 암호화 사용을 권장하는 등 신뢰 회복에 힘썼다. 이 사건은 구글이 정부 기관과의 긴장 관계를 재확인하게 했고, 이후 업계 전반에 암호화 기술 확산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3월, 구글 안드로이드 책임자였던 앤디 루빈이 안드로이드 팀에서 물러나 다른 신사업(로봇 프로젝트)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으로 선다 피차이가 안드로이드 외에 크롬/앱스까지 총괄하게 되어, 향후 그가 구글의 핵심 리더로 부상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2013년은 구글이 처음으로 자사의 글로벌 다양성 통계를 공개한 해였다. 전 세계 직원 중 여성 비율, 소수인종 비율 등을 발표하며, 기술 업계 다양성 부족 문제 해결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투명성의 일환이었으나, 동시에 구글 역시 실적이 다른 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이후 다양성 향상 노력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2014 : 인공지능과 스마트홈
2014년 1월, 구글은 영국의 인공지능 연구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약 5억 달러에 인수했다. 딥마인드는 강화학습 및 딥러닝 기술로 유명했으며, 인수 당시 학습 알고리즘으로 게임을 인간처럼 플레이하는 시연으로 주목받았다. 구글은 딥마인드 인수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재와 기술을 확보했고, 이들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배려를 했다. 딥마인드는 이후 2016년 바둑 AI ‘알파고(AlphaGo)’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구글의 의료·과학 프로젝트에도 핵심 역할을 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구글에게 2014년 딥마인드 인수는 AI 패권 경쟁의 선제적 승부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 등 경쟁사들도 자극받아 AI 투자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2014년 1월, 구글은 스마트 온도조절기와 연기 감지기 등 스마트홈 기기 제조업체 Nest Labs를 32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Nest는 전 애플 출신 토니 파델이 창업한 회사로, 세련된 디자인과 IoT 기술을 겸비해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다. 구글은 Nest 인수를 통해 스마트 홈 시장 진출과 함께, 향후 IoT 시대에 대비한 하드웨어 역량을 얻고자 했다. Nest는 인수 후에도 독립 운영되다가 2018년 구글 하드웨어 부문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혁신적인 신제품이 속속 나오지는 못했고,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Nest 인수는 구글이 검색·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생활 밀착형 하드웨어 기업으로 외연 확장을 시도한 대표 사례로 남아있다.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 후 전략을 재검토한 끝에, 인수 2년 만인 2014년 1월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레노버(Lenovo)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매각 가격은 29억 달러 수준으로, 125억 달러에 인수했던 것에 비하면 큰 손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구글은 핵심 특허 대부분과 모토로라의 고급 기술 인력 일부를 유지했고, 레노버는 저가폰 중심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게 되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매각한 이유로는 파트너들과의 관계 유지(삼성 등 안드로이드 OEM의 불만 해소), 제조사업의 낮은 이익률, 특허만 확보하는 것이 목적 달성 등의 분석이 제기되었다. 이로써 구글의 첫 대형 제조사 인수 실험은 막을 내렸고, 구글은 이후 픽셀폰도 ODM 방식 등 직접 제조보다는 설계 중심으로 접근하게 된다.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이른바 ‘잊힐 권리’에 관한 판결에서, 구글 등 검색엔진이 개인 정보가 포함된 옛 검색결과를 사용자가 요청할 경우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스페인 시민이 자기 이름 검색 시 부당한 옛 기사 링크가 나오는 문제로 구글에 소송을 낸 데 따른 것이었다. 이 판결로 구글은 개인정보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검색결과를 필터링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했다. 구글은 ‘정보검열 위험’을 경고했으나 판결을 수용하여 온라인 양식으로 요청을 받고 개별 검토를 진행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잊힐 권리는 전세계적으로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 균형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고, 구글은 각국의 법적 요구에 대응하는 지역별 검색결과 통제를 경험하게 되었다.
2014년은 앞서 등장한 구글 글래스의 앞날이 엇갈린 해였다. 4월 미국 소비자들에게 1500달러 가격으로 제한 판매도 했지만, 대중화엔 실패했다. 2014년 말 구글은 글래스 프로젝트를 구글 X에서 분리하여 독립 조직으로 재편하고, 제품 전략을 재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소비자 대상 글래스의 중단을 의미했다. 이후 2015년 초 글래스 Explorer 프로그램 종료가 공식 발표되었다. 구글은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향후 버전을 개발하겠다’고 했으나, 일반 소비자용으로는 끝내 재출시되지 못했다. 대신 2017년 기업용 구글 글래스가 나왔고, 2023년에는 글래스 사업을 최종 종료했다. 구글 글래스의 굴곡은 구글의 혁신 프로젝트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시장 성숙도에 대한 판단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2014년 안드로이드는 키캣(KitKat) 버전에서 롤리팝(Lollipop) 버전으로 진화하며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또한 전세계 스마트폰 OS 점유율에서 안드로이드가 약 80%를 차지하며 사실상 모바일 운영체제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삼성 등 일부 제조사는 자체 UI와 앱으로 안드로이드 경험을 덮고 구글 서비스 사용을 줄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원(Android One)’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저가폰에 순정 안드로이드를 공급하고, 구글 플레이 서비스로 핵심 기능을 표준화하는 등 안드로이드 파편화 대응에 나섰다. 이와 별도로 2014년 EU는 안드로이드의 시장지배력 남용 여부를 예의주시하며, 2016년 정식으로 반독점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2014년은 구글이 그동안 진행해온 여러 프로젝트들의 성과를 점검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기 시작한 해였다. 대표적으로 2014년 구글은 2006년 인수했던 동영상 플랫폼 Google Video를 완전히 유튜브로 통합하고, 오래된 서비스(예를 들어 Orkut SNS, 구글 토크 등)를 종료했다. 또한 2014년 4월 클라우드 기업 Stackdriver 인수를 통해 클라우드 모니터링 역량을 강화하고, 9월에는 기업용 이메일 암호화 업체 Postini 서비스를 종료하며 Google Apps 보안으로 통합하는 등 클라우드/엔터프라이즈 분야에 힘을 실었다. 이처럼 구글은 방만한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정돈하고, 미래 전략 분야(AI, 모바일, 광고, 클라우드)에 자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5년 : 알파벳으로의 전환
2015년 8월 10일, 구글은 돌연 지주회사 체제로의 개편을 발표했다. 신규 모회사 알파벳(Alphabet Inc.)을 설립하고, 기존 구글 주식은 알파벳 주식으로 전환되며 구글은 알파벳 산하 자회사로 편입되는 방식이었다. 이 구조에서 본업인 구글(검색, 광고, 안드로이드, 유튜브 등)과 기타 신사업들(구글 X 프로젝트, Nest, Calico, Fiber 등)을 분리함으로써, 조직을 더 ‘깨끗하고 책임 있게(cleaner and more accountable)’ 운영하기 위함이라고 래리 페이지는 설명했다. 페이지가 알파벳 CEO, 브린이 알파벳 사장으로 이동했고, 구글의 새로운 CEO로는 순다 피차이(Sundar Pichai)가 선임되었다. 이 재편은 투자자들에게 구글의 핵심 사업과 투명성을 높이 평가받아, 발표 당일 알파벳 주가가 6% 상승하기도 했다. 알파벳 체제 전환은 구글이 이제 다각적 기술 대기업으로 성장했음을 공식화한 사건으로, 미래 혁신 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고 경영 효율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도 출신의 순다 피차이는 크롬 브라우저와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2015년 8월 구글 CEO에 올랐다. 창업자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 구글 최고경영자가 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는 구글의 일상 경영은 피차이가 맡고, 창업자들은 알파벳을 통해 장기 전략에 집중하는 형태로 역할을 분담한 것이었다. 피차이는 취임 후 조직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큰 변혁보다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 향상과 신기술 통합에 주력했다. 그의 리더십 하에 구글은 인공지능을 회사 전략의 중심에 놓기 시작했고,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 슬로건을 내세우며 변화했다.
알파벳 전환 직후인 2015년 9월, 구글은 16년간 유지해온 고전적인 세리프 로고 대신 산세리프 폰트의 새로운 로고로 교체했다. 이는 모바일 환경에서 가독성을 높이고, 알파벳 산하 다양한 제품군에서도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적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알파벳 출범과 함께 구글은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안드로이드/크롬/검색/광고 등 주요 부문별로 별도 사업부를 두고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했다.
2015년 5월 구글은 사진 서비스를 분리하여 ‘구글 포토(Google Photos)’를 런칭했다. 무제한 사진/동영상 백업과 AI 기반 자동 분류 기능이 인기를 끌며 구글 포토는 단기간에 수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한편, 소셜 분야에서는 구글+의 실패를 인정하고 핵심 기능(사진, 스트림 등)을 각각 분리하거나 축소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안드로이드 페이(Android Pay)’를 출시하고, 거리뷰를 별도 앱으로 내놓는 등 제품 라인 정리가 이어졌다. 또한 구글은 이 해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핸들·페달 없는 완전자율주행 전기차)을 일반 도로 주행 테스트에 투입하여, 100만 마일 이상의 누적 주행을 달성했다. 이는 곧 2016년 알파벳의 독립 자회사 ‘웨이모(Waymo)’로 분사된다.
201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구글이 쇼핑 검색 결과에서 자사 서비스를 부당 우대했다며 독점 금지 위반 공식 조사를 발표했다. 이는 2010년부터 진행된 조사의 연장선으로, 구글에 대한 최초의 EU 공식 제재 절차였다. 같은 달 EU는 안드로이드의 앱 번들링 관행에 대해서도 예비 조사에 착수했다. 구글은 ‘경쟁을 해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2015년은 본격적인 EU 반독점 법정 공방이 시작된 해로 기록된다. 결국 2017년 유럽위원회는 쇼핑 서비스 건으로 구글에 24억 유로 벌금을 부과했고, 2018년 안드로이드 건으로 43억 유로 벌금을 추가한다.
알파벳 체제 하에서 구글은 초창기와는 달리 좀 더 전통적인 대기업 문화 요소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창업자들이 한걸음 물러서고 피차이 체제가 자리잡으며, 내부적으로는 효율성과 수익성을 강조하는 기조가 강해졌다.
한편, 직원 수 6만 명을 넘긴 조직에서 다양한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여성 엔지니어 출신의 한 임원이 구글의 남성 중심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며 사임하는 일이 알려졌고, 외부에서도 실리콘밸리 젠더 다양성 문제가 부각되었다. 구글은 이러한 이슈에 대응하여 다양성 책임자 임명, 직장 내 교육 프로그램(무의식적 편견 훈련) 등을 도입했으나,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있었다. 또한 구글의 ‘20% 프로젝트’ 문화가 팀 내 업무 부담 등으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는 구글이 초기 스타트업적 유연성에서 점차 체계화된 관료조직으로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인다.
2016년 : AI 퍼스트의 서막과 하드웨어 도전
2016년 3월, 알파벳 산하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이벤트는 구글의 AI 연구 성과를 대중에 각인시켰고, 인공지능 기술이 실용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순다 피차이 CEO는 기회 있을 때마다 ‘AI 퍼스트(AI First)’를 구글의 전략 방향으로 천명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개발자 회의(I/O) 키노트에서 피차이는 ‘이제 우리는 모바일 퍼스트 시대에서 AI 퍼스트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는 이후 구글의 제품 설계와 사업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구글 번역은 딥러닝 기반으로 대폭 향상되었고, 지메일의 스마트 답장, 포토의 이미지 인식 등 AI 기능이 속속 도입되었다. AI 퍼스트 전략은 구글이 향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클라우드 AI 서비스 및 음성비서 경쟁에 돌입하는 토대가 된다.
2016년 5월, 구글은 대화형 인공지능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를 공개했다. 이는 기존 구글 나우를 발전시킨 것으로, 자연어 대화 형태로 사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플랫폼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구글 홈(Google Home) 스마트 스피커를 출시하여, 가정에서 어시스턴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아마존 에코(알렉사)에 대응한 제품으로, 음성 UI 시대를 준비하는 구글의 전략적 행보였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초기엔 정확도 면에서 알렉사 등에 견주어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으나, 구글의 방대한 지식그래프와 검색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개선되었다. 이후 안드로이드 폰, TV, 자동차(안드로이드 오토) 등으로 어시스턴트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며, 구글 생태계의 중심 요소로 성장했다.
2016년 10월, 구글은 자사 브랜드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픽셀 폰 시리즈를 처음 선보였다. 과거 넥서스 시리즈가 레퍼런스 성격이 강했다면, 픽셀은 디자인부터 하드웨어 사양, 소프트웨어 최적화까지 구글이 직접 깊숙이 관여한 구글표 폰이다. 첫 픽셀은 뛰어난 카메라 성능(소프트웨어 HDR+ 기술)과 순정 안드로이드 경험으로 호평받았고, 구글 어시스턴트를 최초로 탑재했다. 픽셀 출시로 구글은 애플 아이폰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유통망 한계와 브랜드 인지도 문제로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에 그쳤다. 그럼에도 픽셀은 구글의 하드웨어 의지를 상징하며, 이후 스마트폰 외에도 픽셀북(노트북), 픽셀 슬레이트(태블릿) 등 자체 기기 라인업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관련 행위가 EU 경쟁법을 위반했다며 공식 이의를 제기했다. 구글이 휴대전화 제조사에게 구글 플레이 스토어 라이선스 조건으로 크롬과 검색 앱을 필수 탑재하게 하고, 일부 제조사의 포크드 안드로이드(OS 분기) 개발을 막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는 2018년 7월 43억 유로의 과징금 부과로 이어진다. 또한 2016년 6월에는 러시아 공정위가 비슷한 사안으로 구글에 시정명령을 내려, 구글이 러시아 안드로이드 기기에 경쟁 검색앱 선택권을 주는 등 합의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2016년경부터 구글은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독점력 남용에 대한 규제를 본격적으로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2015년 말 구글은 기업용 클라우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VMware 공동창업자 다이앤 그린(Diane Greene)을 영입한 바 있다. 2016년 구글은 그린의 주도로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 사업을 대폭 확장했다. 3월에는 구글 앱스 리뉴얼 행사에서 기업용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는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GCP)’을 전면에 내세웠고, 빅데이터/머신러닝 서비스(클라우드 스패너, 텐서플로우 등)를 출시했다. 또한 경쟁사 고객 유치를 위해 가격 인하와 무료 크레딧 제공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그 결과 SAP, 홈디포 등 대기업 고객사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은 여전히 구글 클라우드가 AWS, MS Azure에 뒤쳐진 후발주자였으나, 이후 가장 빠른 성장률로 따라붙는 기반을 다졌다.
구글 X에서 진행되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는 2016년 12월 알파벳 자회사 ‘웨이모(Waymo)’로 독립했다. 이 무렵 웨이모 차량은 누적 200만 마일의 자율주행 시험주행을 기록했고, 안전성을 입증하며 피닉스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시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웨이모의 분사는 구글이 비핵심 사업을 알파벳 체제로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로, 이후 웨이모는 외부 투자 유치 등을 통해 독자 운영된다. 또한 이 해 5월 구글은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 인물 앤서니 레반도스키가 경쟁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며 기술 유출 논란이 발생, 2017년 우버와 소송전을 벌이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2016년 구글은 비교적 조용한 한 해를 보냈으나, 내부적으로 성희롱 문제에 대한 처리 등이 도마에 올랐다. 2016년 초, 오랫동안 구글 검색 부문을 이끌던 아밋 싱할(Amit Singhal) 수석부사장이 사임했는데, 훗날 그의 퇴사가 사내 성희롱 의혹 조사와 관련되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몇 년 뒤 구글 내부 미투 운동의 단초 중 하나였다. 한편 구글은 이 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블랙 구글러 네트워크’ 등 다양성 그룹 활동을 지원하며, 포용적 문화 조성을 시도했다. 조직 구조 상으로는 알파벳 전환이 안정화되면서 비교적 큰 혼란 없이 운영되었고, 직원 수는 2016년 말 약 7만 2천 명으로 증가했다.
2017년 : 기록적인 EU 과징금
2017년 6월, 유럽연합 집행위는 7년간의 조사 끝에 구글이 자사 쇼핑 비교 서비스(Product Search/Shopping)를 검색결과 상단에 부당하게 노출하고 경쟁사 서비스를 하위로 내려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 24억 2천만 유로(약 3조 원)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은 즉각 반발하며 항소했지만, 우선 검색 페이지에서 경쟁 쇼핑 서비스에도 동등한 노출 기회를 주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는 구글이 처음으로 받은 본격적 반독점 페널티로, 이후 2018년 안드로이드 사건, 2019년 애드센스 사건으로 이어지며 EU 누적 과징금이 80억 유로를 넘게 된다. 2017년의 결정은 구글 사업모델에 규제가 현실화된 사례로 기록되었고, 구글은 검색 알고리즘의 중립성에 대한 전 세계적 논쟁에 휘말렸다. (참고로 이 쇼핑 과징금은 2021년 유럽 일반법원에서 대부분 인용되어 구글 패소 판결이 유지되었고, 2024년 9월 최고법원(CJEU)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2017년 8월, 구글 엔지니어 제임스 다모어(James Damore)가 사내에 유포한 ‘구글의 이념적 동조압력’ 메모가 외부에 알려져 거센 논란이 일었다. 10쪽짜리 이 문서에서 다모어는 ‘여성들이 생물학적 이유로 기술직 비율이 낮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며 구글의 다양성 추진을 비판했다. 메모 내용이 공개되자 언론과 업계에서 큰 파장이 일었고, 구글 내부 직원들 역시 들끓었다. 순다 피차이 CEO는 즉각 모든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해당 메모가 유해한 성별 고정관념을 조장한다고 지적했고, 다모어를 해고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구글을 비판했고, 다모어는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결국 기각). 이 사건은 실리콘밸리의 젠더 다양성 문제와 자유로운 토론 문화의 경계에 관한 격렬한 토론을 촉발했다. 구글로서는 ‘Don’t be evil’ 문화 속에서 성장한 직원조차 회사의 가치에 반하는 견해를 가질 수 있음을 직면했고, 이후 다양성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내규를 정비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2017년 8월, 구글은 안드로이드 8.0 버전을 ‘오레오(Oreo)’로 명명하며 출시했다. 최초로 실제 상표명을 딴 코드네임을 사용한 것으로, 구글은 나비스코사와 제휴하여 마케팅에 활용했다. 안드로이드 오레오는 멀티태스킹 지원(PIP 모드), 알림 채널 등 개선을 선보였으나, 시장 보급은 더딘 편이었다. 이 무렵 안드로이드의 버전 파편화 문제가 심각해지자, 구글은 Project Treble이라는 구조 변경을 통해 업데이트를 쉽게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2017년 말 구글은 안드로이드원 프로그램을 부활시켜 신흥시장 저가폰에 순정 안드로이드를 공급하고, ‘Go Edition(경량 OS)’을 출시하며 저사양 기기 대응을 강화했다. 이는 안드로이드 생태계 통일성을 높여, 장기적으로 iOS와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2017년 10월, 구글은 두 번째 픽셀폰 시리즈 픽셀 2와 픽셀 2 XL을 발표했다. 특히 카메라 성능은 시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아, 스마트폰 사진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이와 함께 구글은 대만 HTC 스마트폰 부문의 인력과 자산 일부를 11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픽셀 개발에 핵심적이던 엔지니어 약 2천 명을 흡수하고, HTC의 특허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HTC 인수합병에 준하는 인재 확보로, 구글이 하드웨어 내재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픽셀 3 등부터 이 인력들이 본격 기여하여, 구글의 하드웨어 품질이 향상되었다.
2017년 구글 클라우드는 머신러닝 플랫폼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구글이 자체 개발한 ‘TPU(Tensor Processing Unit)’라는 AI 연산 특화 칩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하여, 개발자들이 저렴하게 대규모 딥러닝 연산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는 AWS 등이 GPU 위주로 제공하는 것과 차별화되는 구글 클라우드만의 강점으로 부각되었다.
또한 구글이 오픈소스로 공개한 ‘머신러닝 프레임워크 텐서플로우(TensorFlow)’가 산업 표준처럼 자리잡아, AI 붐 속에 구글 생태계가 확장되었다. 한편 2017년 구글 클라우드는 100여 개 국가에 데이터센터 리전을 운영하게 되었고, 매출이 전년 대비 크게 성장했으나 여전히 적자였다. 구글은 ‘방대한 데이터와 뛰어난 AI 기술을 가진 우리가 클라우드 시장 리더십을 가져올 것’이라 호언하며, 공격적 투자를 이어갔다.
2017년 7월, 알파벳의 생명연장 연구 자회사 칼리코(Calico)가 인간 노화 연구에서 일부 진전을 발표하며 화제가 됐다. 같은 해 구글 파이버(Fiber)는 사업 확장을 일시 중단하고 일부 도시에서 철수해, 광섬유 인터넷 사업의 어려움을 노출했다. 11월에는 Waymo가 우버를 상대로 한 영업비밀 소송에서 우버의 잘못을 일부 입증하며 합의금과 Uber의 자율주행 개발 지연을 끌어내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12월, 창업자 러리 페이지가 성대 질환 등을 이유로 건강상 공개석상에 거의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구글은 2017년 말부터 사내에서 성희롱 및 성차별에 대한 익명 토론 게시판이 활성화되는 등, 직원들이 회사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싹텄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듬해 2018년 대규모 직원 행동으로 이어진다.
2018년 : 파업
2018년 7월, EU는 안드로이드 OS의 반독점 위반에 대해 43억 4천만 유로(약 5조 7천억원)라는 사상 최고 금액의 벌금을 구글에 부과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에게 구글 검색 앱과 크롬 브라우저를 의무 탑재시키고, 포크된 안드로이드 사용을 금지하는 계약을 맺어 경쟁을 제한했다는 판단이었다. 마거릿 베스타거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구글이 안드로이드로 검색엔진 지배력을 강화하여 경쟁과 혁신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구글은 즉각 항소를 제기함과 동시에, 유럽 지역에서는 제조사들이 구글 앱을 선택적으로 탑재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 정책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구글 사업 모델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후 유럽 시장 안드로이드폰에는 검색·브라우저 앱 선택 화면이 표시되는 등 변화가 생겼다. 2022년 유럽 일반법원은 벌금 액수를 약간 줄여 41억 유로로 유지 판결했으며, 현재 최종심이 진행 중이다.
2018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로 구글 소셜 네트워크 구글+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폭로되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구글+ API 버그로 최대 50만 명의 이용자 프로필 정보가 제3자 개발자에게 노출되었는데, 구글이 이를 알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구글은 직후 소비자 대상 구글+ 서비스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내부 문건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 터진 직후 이 버그를 인지한 구글은 ‘우리가 주목받게 될까 우려’하여 즉시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2019년 4월 구글+가 완전히 종료되면서 구글의 세 번째 소셜 네트워크 실험도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구글이 투명성보다 평판 관리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불러왔고, 데이터 취급에 대한 규제자 감시를 한층 강화시켰다.
2018년 11월 1일, 전세계 구글 직원 약 2만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출근 후 업무를 멈추고 회사 건물을 나서 시위를 벌였다. 뉴욕, 캘리포니아, 런던, 싱가포르, 서울 등지의 구글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Not OK, Google’ 등의 피켓을 들고 행진하며, 회사 경영진의 성추문 처리 방식에 항의했다. 이는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안드로이드 창시자 앤디 루빈 등 고위 간부들의 성비위 의혹과 거액 퇴직금 지급 관행에 분노한 직원들이 조직한 ‘Google Walkout’ 운동이었다. 이들은 5대 요구사항(성희롱 강제중재 폐지, 임금 투명성, 다양성 책임자 경영진 직속화 등)을 발표했고 , 순다 피차이 CEO는 이에 공식 사과하며 요구 일부를 수용했다. 실제로 구글은 이후 직원에 대한 강제 중재 조항 폐지 등 정책을 변경했다. 이번 사태는 실리콘밸리 사상 최대 규모의 직원 집단행동으로 기록되었고, 구글의 기업 문화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또한 이 사건 이후 주요 주최자들이 차례로 회사를 떠났는데, 이 과정에서 보복성 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구글 직원들의 목소리는 2020년대 들어 노조 결성(알파벳 노동조합) 등으로도 이어지며, 과거와 다른 노동문화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2018년 8월, 매체 보도를 통해 구글이 중국용 검열 검색 엔진을 비밀리에 개발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내부 코드명 ‘프로젝트 드래곤플라이’로 불린 이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 검열 기준에 맞춰 특정 검색어를 필터링하는 안드로이드 앱 형태의 검색 엔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수년 만에 중국 재진출을 모색하는 움직임이었으나, 이 소식에 외부 인권단체들은 물론 구글 내부 직원들까지 강하게 반대했다. 11월에는 1,400명 이상의 직원이 공개 서한을 쓰고 프로젝트 중단을 촉구했다. 직원들은 ‘구글이 이전에 중국에서 보여준 원칙을 저버리고 있다’고 성토하며 회사의 투명성 부족을 비판했다. 결국 12월 미 상원 청문회에서 선다 피차이 CEO는 ‘현재로선 중국 출시 계획이 없다’고 답하며 한발 물러섰고, 이듬해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래곤플라이 사건은 구글 내부의 윤리의식과 경영 판단이 충돌한 사례로, 이후 구글이 AI 및 사업 결정에 있어 윤리 검토를 더욱 의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5월, 구글이 설립 때부터 강조해온 비공식 좌우명 ‘Don’t be evil(악해지지 말자)’ 문구가 회사 행동 강령(Code of Conduct)에서 조용히 삭제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기즈모도 보도에 따르면 2018년 4~5월 사이에 구글은 행동강령 서문에서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마지막 부분에만 언급하도록 변경했다. 이 소식은 많은 언론에 보도되어, 구글의 문화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구글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시점상 드래곤플라이 논란 및 직원들 내부 비판이 일던 때와 맞물려 상징적 모토의 퇴색으로 인식되었다. 다만 ‘Don’t be evil’ 문구 자체는 이후에도 사내 회의나 경영진 발언에서 언급되곤 했고, 여전히 구글 문화의 한 축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구글이 초기의 순진한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정책과 ‘Do the right thing(옳은 행동을 하라)’ 등으로 모토를 진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2018년 프로젝트 메이븐(미군 드론 AI 계약)에 대한 직원 반발이 일어난 후, 구글은 6월에 AI 개발 윤리 원칙을 최초로 발표했다. 여기에는 AI 기술을 인권 침해나 감시에 쓰지 않겠다는 내용과, 무기 개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원칙 등이 담겼다. 이는 직원들의 압박에 따른 것으로, 실제 구글은 프로젝트 메이븐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2019년 종료했다. 이러한 윤리 원칙은 구글이 AI를 활용한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생기는 딜레마(드래곤플라이 같은 사례)에 대한 가이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AI 원칙의 실효성을 놓고도 논란이 지속되었고, 2019년 구글은 AI 윤리위원회를 신설했다가 구성 논란으로 일주일 만에 해산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어쨌든 2018년은 기술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구글 내부의 자각과 대응이 본격화된 해였다.
2018년 1월, 에릭 슈미트가 알파벳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비상임 기술 고문으로 역할을 바꿨다. 이로써 2001년 이후 구글 경영 전면에 섰던 슈미트가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2019년에는 이사회에서도 완전히 퇴임했다. 또한 구글 클라우드 부문을 이끌던 다이앤 그린이 2018년 말 사임하고, 후임으로 오라클 출신 토마스 쿠리안(Thomas Kurian)이 2019년 1월부터 맡게 되었다. 이는 구글이 엔터프라이즈 영업 강화를 위해 보수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영입한 것으로, 이후 구글 클라우드의 전략적 변화가 나타났다. 그리고 12월, CEO 피차이가 국회 청문회에 처음 출석하여 정치 편향성 논란 등에 답변하는 등, 구글의 영향력이 정치권에서도 본격 다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2019년 : 공동 창업자 시대의 마감
2019년 12월 3일,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각각 알파벳의 CEO와 사장 직에서 물러나며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구글과 알파벳의 CEO 역할은 모두 순다 피차이에게 일원화되었다. 공동 창업자들은 편지에서 ‘회사가 잘 성장하여 이제 두 CEO와 사장이 필요 없게 되었다. 한층 단순한 경영 구조로 갈 시간’이라고 밝혔다. 또한 ‘창업자라는 타이틀은 유지하지만, 일상 경영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이들의 퇴진은 구글 역사에서 한 시대의 끝을 의미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후 명예직으로서 이사회 멤버와 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면서, 관심 분야(브린은 연구 등, 페이지는 개인 사업)에 집중하게 된다. 순다 피차이는 명실상부 구글 제국의 단일 수장이 되어, 경영 구조 단순화와 책임소재 명확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 창업자의 퇴장은 구글이 초기 창업자 정신에서 벗어나 전문 경영인 체제로 완전히 전환했음을 상징하며, 20주년을 맞은 회사가 성숙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2019년 3월, EU는 구글이 자사의 검색 광고 중개 서비스 애드센스(AdSense)에서 경쟁을 제한했다며 14억 9천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2006-2016년 구글이 AdSense 계약을 맺을 때 고객 웹사이트에 구글 이외 경쟁사의 검색광고를 게재하지 못하도록 한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구글은 해당 조항을 이미 중단했다며 불복했으나, EU는 3건에 걸쳐 총 3건 3종의 독점 남용에 대한 제재를 모두 완료했다며 이것이 ‘마지막 결정’이라고 언급했다. (훗날 2022년 유럽 법원은 이 벌금은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 구글이 이 건은 피하게 되었다.) 2019년까지 이어진 EU의 연쇄 조치는 구글에게 사업 운영 방식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글은 검색 페이지 UI 수정, 안드로이드 라이선스 정책 변경, 애드센스 계약 조항 삭제 등 시정조치를 이행하면서도, 한편으론 각 판결에 항소해 법적 다툼을 계속했다.
2019년 2월, 알파벳은 분기 실적 발표에서 처음으로 유튜브와 클라우드의 매출을 별도 공개하기 시작했다. 2019년 연간 유튜브 광고 매출이 151억 달러, 구글 클라우드 매출이 89억 달러로 밝혀져 시장 관심을 모았다. 이는 구글이 광고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수익원을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체 매출(1620억 달러)에서 검색 및 기타 광고 비중은 여전히 83%에 달해, 광고 제국의 면모도 확인됐다. 2019년은 글로벌 경제 호황 속에 구글도 매출·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으나, 동시에 비용(특히 데이터센터 투자와 인력)이 크게 늘어 영업이익률은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한 알파벳의 ‘기타’ 사업(예: Waymo, Verily 등)은 여전히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있어, 투자자들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미국 FTC는 유튜브가 어린이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법(COPPA)을 위반했다며 구글에 1억 7천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어린이 대상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 수집 제한 등을 명령했다. 이에 구글은 유튜브 키즈 정책을 대폭 수정하고 제작자들에게 콘텐츠 성격을 신고하도록 하는 등 대응했다. 또한 유튜브에서는 2019년에 극단주의, 가짜뉴스 영상 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알고리즘을 조정하여 혐오·음모론 영상 수백만 건을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구글 검색도 건강 정보 등에 팩트체크 표시를 도입하는 등 플랫폼 책임을 의식한 조치를 확대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0년대 거센 콘텐츠 규제 압력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이기도 했다.
2019년 4월, 구글은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스타디아(Stadia)를 발표하며 콘솔 없이 클라우드에서 고사양 게임을 실행하는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1월 출시된 스타디아는 초기 콘텐츠 부족과 기술 이슈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결국 2023년 서비스 종료를 맞는다.
2019년 5월에는 중저가 스마트폰 픽셀 3a를 출시해 픽셀 판매를 늘리는 성과를 거뒀으나, 10월 나온 픽셀 4가 혁신 부족으로 혹평을 받아 스마트폰 전략에 고민을 안겨주었다.
한편, 2019년 9월에는 AI를 활용한 새로운 검색 기능인 구글 렌즈(Lens)와 영상 검색 개선, 자연 대화형 어시스턴트 업데이트 등이 공개되어 기술력은 여전히 선도적임을 과시했다. 또한 머신러닝 언어 모델 BERT를 검색 알고리즘에 적용하여, 구글은 2019년 가장 큰 검색 품질 향상 중 하나를 이루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AI 시대 검색 엔진의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2019년 구글 내부에서는 2018년 격렬했던 직원 행동들 이후 경영진이 사내 소통을 축소하려는 기조가 감지됐다. 예컨대, 매주 열리던 전사 직원회의 TGIF를 2019년 하반기부터 월례로 줄이고 제품 중심 논의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속되는 정보 유출과 직원 갈등을 고려한 조치였지만, 일각에서는 ‘구글의 개방적 문화가 퇴색한다’는 아쉬움이 나왔다. 실제로 2019년 말 TGIF 회의는 전통적으로 참여하던 공동창업자들도 더 이상 얼굴을 비추지 않게 되어, 예전같은 자유로운 질의응답 분위기가 줄었다고 한다. 대신 경영진은 직장 내 이슈에 대해 별도 타운홀을 여는 등 대응했으나, 노조 등 집단 형성에 민감하게 대처하여 2019년 말 활동가 직원 몇 명을 해고해 논란을 빚었다. 이 같은 긴장 속에 구글은 기업 문화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와 마주했다. 한편, 순다 피차이는 2019년 CEO 연임 계약으로 총액 2억 달러에 이르는 스톡옵션을 부여받아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구글의 안정적 운영과 주주가치 창출에 피차이가 기여했다는 이사회 판단이지만, 내부에선 임금격차 논쟁의 소재가 되었다.
2020년 : 팬데믹과 사법 리스크
2020년 초 COVID-19 팬데믹이 전세계로 확산되자, 구글은 3월부터 전면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하고 오피스 폐쇄를 단행했다. 또한 구글 검색, 유튜브 등에서 코로나 정보 패널을 제공하고 허위정보를 차단하는 등 플랫폼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다. 구글 지도는 혼잡 시간 표시, 영업 정보 업데이트 기능을 추가했고, 구글은 애플과 협력해 접촉자 추적 API를 개발하여 각국 보건당국에 제공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G Suite for Education과 크롬북이 대규모 원격수업 인프라로 활용되며 구글 생태계 확장이 가속되었다. 그러나 광고 사업은 2020년 2분기 일시적으로 창사 이래 첫 역성장을 겪었고, 구글 클라우드는 기업 예산 삭감으로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이에 구글은 비용 절감과 투자 재조정에 들어갔으며, 연말까지 대규모 채용을 동결했다. 또 사무실 복귀를 2021년 중반으로 미루고, 원격근무 지원금 및 장비 지원 등 직원 복지에 힘썼다. 코로나 팬데믹은 구글이 핵심 인프라 제공자로서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중요성을 드러낸 한편, 사업 다각화와 안정적 수익원의 필요성도 일깨웠다.
2020년 10월, 미국 법무부(DOJ)와 11개 주가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은 구글이 애플 등 플랫폼과 배타적 계약(거액을 지급하고 아이폰 사파리 기본 검색이 되도록 함)으로 검색 시장 독점을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1998년 MS소송 이후 최대 규모의 빅테크 반독점 소송으로, 2023년 가을부터 본격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어 12월에는 38개 주 검찰총장이 별도로 구글의 검색 결과 디자인(자사 서비스 우대)을 문제삼아 소송을 냈고, 같은 달 텍사스 등 10개 주는 구글의 디지털 광고 시장 독점(특히 헤더 비딩 관련 행위, 페이스북과의 담합 의혹)을 이유로 또 다른 소송을 제기했다. 이로써 구글은 미국 내에서 세 건의 병렬 반독점 소송에 직면했다. 이는 2023-202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심리되며, 구글이 최악의 경우 강제 분할 등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구글은 ‘사용자에게 유익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 결과’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최고의 변호인단을 꾸려 적극 다투고 있다. 2020년의 이 소송들은 구글이 더 이상 규제에서 자유로운 미국 내 안방마저 잃었음을 뜻하며, 법적 리스크가 향후 수년간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020년 12월, 구글의 윤리적 AI 연구팀 공동리더였던 팀닛 게브루(Timnit Gebru)가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퇴사(혹은 해고)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게브루는 흑인 여성 AI 전문가로, AI 편향성 연구의 권위자였는데, 구글 경영진이 자신이 쓴 연구 논문을 검열하려 했고 이에 반발하자 해고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은 언론에 공개되어, 구글이 AI 윤리에 반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과 함께, 사내 다양성 존중 문화에도 타격을 주었다. 수천 명의 직원이 서명 운동으로 회사의 조치를 규탄했고, 구글은 진화에 나서 2021년 2월에는 남아있던 윤리 AI팀 공동리더 마가렛 미첼도 해고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결국 2021년 중순, 구글은 윤리 부서 조직개편과 경영진 문책 없이 사안을 덮었지만, 외부 AI 학계와 내부 직원들의 신뢰에 상당한 금이 갔다. 이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구글 AI 연구 문화 갈등을 드러낸 사건으로, 구글은 이후 AI 연구의 투명성 제고, 내부 심사 절차 정비 등의 개선안을 도입했다.
2020년은 구글이 처음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을 한 해이기도 했다. 2월 구글은 클라우드 사업 내 세일즈/마케팅 조직을 재편하며 수백 명을 감원했고, 5월에는 스타디아 게임 개발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2020년 8월 픽셀 4a 중저가 모델이 출시되어 호평받았으나, 고급형 픽셀 5는 성능 대신 가격 경쟁력을 선택해 전략 변화가 보였다. 결국 구글은 스마트폰에서 최고 사양 경쟁을 지양하고, 가성비와 소프트웨어 경험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또한 2020년 11월, 웨어러블 업체 핏빗(Fitbit) 인수를 완료하며 스마트워치 시장 진입 기반을 다졌다. 이 과정에서 EU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용자 건강 데이터 분리 등 조건을 수용했다. 이듬해 픽셀 워치로 결실을 맺게 되는 이 인수는, 구글이 모바일-웨어러블 통합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2020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구글 등 대형 IT기업에 대한 디지털 서비스세(디지털세) 도입을 잇따라 결정했다. 구글은 이는 무역 역차별이라며 미 정부와 함께 반대했으나, 결국 프랑스에 1년에 1억 유로 이상 세금을 납부하기 시작했다. 또한 호주에서는 뉴스 콘텐츠 사용료 지불을 의무화하는 법이 추진되자,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철수할 수도 있다고 압박하며 갈등을 빚었다. 최종적으로 2021년 호주에서는 뉴스 미디어 협상법이 통과되어, 구글이 로컬 언론사들과 개별 계약을 맺는 선에서 타협되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구글의 플랫폼 영향력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되었고, 구글은 하나씩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이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구글이 시장마다 다른 법·문화 환경에 적응하는 레귤ATORY 컴플라이언스 역량을 시험하는 시기였다.
2021년: 메타버스·반독점 압력
2021년 1월, 구글과 알파벳 자회사 직원 약 200여 명이 참여한 알파벳 워커스 유니온(Alphabet Workers Union)이 출범했다. 전통적인 교섭권을 가진 노조는 아니지만, 직장 내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경영진을 견제하려는 목적의 단체였다. 이는 2018~2019년 잇따른 직원 운동의 연장선으로, 실리콘밸리 대기업 중 이례적인 움직임이었다. 노조는 회사의 인종차별 문제, 성희롱 처리, 군사 계약, 드래곤플라이 등을 지속 감시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구글 경영진은 공식 교섭 의무가 없는 이 단체를 크게 상대하지 않았으나, 점차 확산 가능성을 예의주시했다. 2022년까지 노조 회원은 수백 명 규모로 늘어났고, 아마존 등 다른 IT 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자극을 주었다. 구글은 노조 결성을 막진 않았으나 2021년 3월 미국 노동위(NLRB)는 구글이 노조 조직자를 부당 해고했다고 판단하는 등, 노동 관계 이슈가 불거지기도 했다.
2021년 구글은 몇몇 부문의 전략을 재고했다. 8월에는 야심차게 출범시켰던 구글 건강(Google Health) 조직을 해체하고 인력을 각 제품팀으로 재배치했다. 이는 헬스케어 사업의 뚜렷한 성과를 못 낸 데 따른 것으로, 일부는 Fitibit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10월에는 클라우드 IoT 서비스 축소, 스타디아의 외부게임 퍼블리싱 계획 철회 등 집중과 선택의 기조가 이어졌다. 대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튜브 쇼츠(틱톡 대응 단편영상)와 전자상거래 기능에 투자를 늘렸다. 유튜브 쇼츠는 사용자 호응으로 월 조회수 50억 회를 돌파했고, 쇼핑 검색 등 전자상거래 연계도 꾸준히 강화되었다. 2021년은 구글이 미래 유망 분야에 집중하고, 성과 없는 이니셔티브를 정돈함으로써 효율화에 나선 해였다.
2021년 10월, 구글은 안드로이드 12를 배포하며 새로운 디자인 언어 ‘머티리얼 유(Material You)’를 도입했다. 사용자 맞춤 색상 테마 등 대대적 UI 개편으로 안드로이드의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켰고, 개인정보 보호 대시보드 등 프라이버시 기능도 강화했다. 또한 같은 달 공개된 픽셀 6 시리즈는 구글이 자체 설계한 SoC 텐서 칩을 탑재하여 AI 연산 최적화를 내세웠다. 이는 애플처럼 칩셋을 커스텀 설계함으로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을 추구한 것으로, 음성 인식 등의 성능을 크게 끌어올렸다. 픽셀 6는 호평을 받아 픽셀 판매량이 이전 대비 크게 증가했고, 구글이 프리미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졌다. 이처럼 구글은 플랫폼과 하드웨어의 수직 통합을 한층 진전시켜 애플과 경쟁 구도를 강화했다.
2021년 하반기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고 메타버스 비전을 강력히 제시하자, 구글도 자사 관련 기술들을 점검했다. 과거 구글 글래스, 데이드림 VR 등에서 주춤했던 경험이 있지만, 구글은 ARCore(모바일 증강현실 SDK)와 VR 기술 특허 등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순다 피차이는 ‘구글은 실내 지도, 증강현실 검색 등 이미 메타버스의 구성 요소를 제공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 AR 글래스 개발 재개, 스타트업 투자 등을 진행했다. 실제로 2022년 7월 구글은 번역 기능이 있는 AR 안경 프로토타입을 공개하기도 했다. 메타버스 화두는 구글에게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 경쟁을 촉발했고, 구글은 검색과 OS 강점을 살린 현실 세계 정보와 가상융합 서비스에 무게를 두는 전략을 취했다.
2021년 미국 의회에서는 빅테크 규제 법안들이 초당적으로 논의되었다. 그중 구글을 겨냥한 플랫폼 독점금지 법안(예를 들어 자기서비스 우대 금지, 검색엔진에 경쟁 서비스 선택 제공 의무 등)이 하원 통과 후 상원 심사 중이었다. 구글은 적극 로비와 홍보를 통해 ‘사용자 편의 저해’를 주장하며 법안 저지를 시도했다. 빅테크 규제 법안들은 2022년 말까지 표류하며 최종 입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표적이 된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구글은 이에 대비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에게 규제 반대 캠페인을 돕도록 하거나, 안드로이드 제조사와 연대하여 위험성을 알리는 등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 이 시기 워싱턴 정가에서 구글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과 함께 ‘기술 독점’의 하나로 거론되었으며, 이는 기업 평판과 인재 영입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3월, 구글은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강화를 위해 유명 보안 기업 만디언트(Mandiant)를 54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완료는 2022년) 이는 랜섬웨어 등 보안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 고객 유치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구글은 이 인수로 보안 운영센터(SOC) 솔루션을 확보하여 AWS, Azure 대비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또한 2021년 8월 미 백악관 회의에서 구글은 5년간 100억 달러 보안 투자와 10만 명 IT교육을 약속하며, 국가 사이버보안 강화에 협력했다. 점차 클라우드와 엔터프라이즈 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구글은 신뢰성 있는 파트너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보안·규제 준수 측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2022년: 구조 최적화와 새로운 도전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제재가 시작되자, 구글은 러시아 내 광고 영업을 중단했고, 유튜브는 러시아 국영 매체를 차단했다. 결국 5월 러시아 정부가 구글 러시아 법인을 파산 처리하면서 구글은 현지 대부분의 운영을 중지했다. 이는 세계 인터넷의 지형을 바꾸는 사건으로, 구글은 사실상 러시아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구글의 서비스들은 러시아에서 크게 제한되었으나, VPN 등을 통한 접속은 일부 지속되었다. 한편 우크라이나에서는 구글이 피난민 지원 정보, 공습 경보 알림 기능 등을 제공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이 전쟁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구글은 다른 지역(중국, 러시아 등)에서 사업 중단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게 되었다.
2022년 5월 개발자 회의(I/O)에서 구글은 다수의 AI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특히 5400억 파라미터 규모의 초거대 언어모델 PaLM, 이미지 생성 AI Imagen, 대화형 AI LaMDA 2의 진전을 공개하며 AI 선도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또 이를 활용한 기능으로 구글 검색에 ‘멀티서치(문자+이미지 복합 검색)’를 도입하고, 자동 요약, 실시간 번역경험 향상 등 제품에 녹여냈다. 한편, 증강현실(AR) 안경 프로토타입을 시연하여, 실시간 다국어 대화 번역 기능을 보여주었다. 이는 구글이 AR 기기 시장 재도전을 준비 중임을 시사했고, 2023년 관련 테스트에 착수했다. 전반적으로 2022년 초까지 구글은 AI 연구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연말 오픈AI의 ChatGPT 등장으로 경쟁 구도가 변화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2022년은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IT 업계에 한파가 찾아왔다. 디지털 광고 성장세도 둔화되어, 구글의 분기 매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에 순다 피차이는 7월 사내에서 ‘생산성 향상 캠페인(Simplicity Sprint)’을 실시하며 아이디어 공모와 조직슬림화를 예고했다. 구글은 속도와 효율을 키워드로 삼아, 신중한 채용과 우선순위 조정에 들어갔다. 9월에는 실패한 프로젝트(Loon 등)를 정리하고, 여행 사업 부문 인력을 축소했으며, 11월에는 스타디아 게임 서비스를 종료했다. 또한 팀별 예산을 긴축하고 출장 및 행사 지출을 줄였다. 구글은 한동안 팬데믹 호황으로 인력과 비용이 급증했으나, 2022년부터 ‘빨리 실패하고 핵심에 집중’하는 철학을 재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사전 정비에도 불구하고, 결국 2023년 초 구글 역사상 첫 대규모 정리해고로 이어지게 된다.
구글 클라우드는 2022년에도 매출이 30% 이상 성장하며 점유율을 높였으나, 투자 확대로 적자는 지속되었다. 2022년 3월 구글은 사이버보안 기업 만디언트 인수를 완료했고, 10월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 GitHub 경쟁 서비스로 ‘구글 코드 검색(Code Search)’을 공개했다. 또한 GCP는 리전 확장과 함께, 멀티클라우드 관리툴 Anthos, 데이터 분석 BigQuery 개선 등 엔터프라이즈 기능을 늘렸다. 조직적으로는 구글 워크스페이스(Gmail, Docs 등)와 GCP 영업 인력을 통합해 시너지를 내고, 기술적으로는 검색 엔진의 일부를 클라우드 인프라로 이전하는 등 알파벳 내부 통합을 추진했다. 2022년 10월에는 데이터 분석 기업 룩커(Looker)와 구글 데이터 스튜디오를 합쳐 ‘룩커 스튜디오’로 만들고, 워크스페이스도 차세대 협업툴에 AI를 접목하는 등 제품 라인 정리와 통합 브랜드 전략을 보였다.
2022년 구글은 세 가지 운영체제(안드로이드, 크롬 OS, Fuchsia)를 모두 키우는 전략을 취했다. 안드로이드는 13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며 태블릿 및 대화면 기기(Ultra) 지원을 강화했고, 10월에는 첫 구글 태블릿 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크롬 OS는 코로나 이후 노트북 교육시장 점유율이 상승했으며, 2022년에는 태블릿형 크롬북 등 폼팩터를 다양화했다. 한편 구글이 수년간 개발해온 신흥 OS Fuchsia는 2021년 Nest Hub에 처음 적용된 데 이어, 2022년엔 두 번째 기기에 탑재되었다. Fuchsia는 아직 내부 실험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 안드로이드/크롬 대체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러한 다중 OS 전략은 구글이 IoT 시대의 모든 기기 환경을 아우르려 함을 보여준다.
2022년에도 구글은 법적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6월 EU 일반법원이 안드로이드 관련 과징금(2018년 부과)을 42억 유로로 약간 감액 유지하며 구글 패소 판결했다. 9월에는 미국 법원이 2010년대 구글의 앱스토어 수수료가 과도했다며 집단소송 합의금 9천만 달러를 승인했다. 또 10월에는 40개 주와 위치정보 오용 건으로 3억 9천만 달러에 합의했다. 심지어 12월 EU는 광고 개인화에 대한 GDPR 위반으로 구글 애널리틱스 사용 금지 결정을 내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각지의 조사와 소송이 쉴새없이 이어져, 구글은 매년 수억 달러 이상의 벌금과 합의금을 지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GDPR)와 경쟁법 이슈는 구글 서비스 설계에까지 변화를 강제하고 있어, 구글은 사전 규제 대응팀과 변호인단을 크게 늘려야 했다. 이는 구글이 ‘규제 속에서 혁신’해야 하는 뉴 노멀(new normal)을 맞았음을 의미한다.
2023년 : AI 경쟁의 격랑과 조직 재편
2023년 1월,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약 1만 2천 명(전체 6%)의 인력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구글 설립 이래 최대 규모 해고로, 전년도 경기둔화 대비 비용 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대상은 주로 채용팀 등 G&A 부문과 일부 실험적 프로젝트 인력이었다. 순다 피차이는 ‘지난 몇 년간 인력을 너무 빠르게 늘렸고, 이제 책임을 통감한다’는 메모를 직원들에게 전했다. 구조조정은 비교적 신속히 마무리되었으나, 해고 대상 선별 기준의 불투명성으로 일부 직원 불만이 나왔다. 이와 함께 경영진 보수 삭감 등도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 구글의 해고는 메타, 아마존 등에 이어 빅테크의 거품 축소 흐름의 일부였으며, 이를 통해 구글은 상대적으로 슬림한 조직으로 재출발하게 되었다.
2022년 말 등장한 ChatGPT로 촉발된 생성 AI 열풍은 2023년 구글의 최대 위기로 떠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ChatGPT 기술을 빙 검색 등에 통합하자, 구글은 2023년 2월 자사 대화형 AI ‘바드(Bard)’를 발표하며 대응했다. 초기 바드 공개행사에서 AI의 실수로 구글 주가가 급락하는 해프닝도 있었으나 , 구글은 곧바로 바드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3월 바드를 미국·영국 사용자에 공개 베타 출시한 뒤, 모델 업그레이드(PaLM 2 적용)로 성능을 높이고 5월부터 180여 국가로 지원을 확대했다. 또한 5월 I/O에서는 생성 AI를 검색에 통합한 ‘검색 생성경험(SGE)’ 기능을 시연하고 Gmail, 문서 등 워크스페이스 제품에 AI 비서 기능(Duet AI)을 추가했다. 이는 구글이 보유한 광범위한 서비스에 AI를 스며들게 하여 생산성 혁신을 꾀하는 전략이다.
2023년 하반기까지 바드는 코드 해석, 이미지 생성 등 기능이 강화되었고, 11월에는 대형 업데이트인 Gemini 모델을 탑재했다. 비록 오픈AI나 MS 대비 출발은 늦었지만, 구글은 AI 연구 저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경쟁 격차를 좁혀나갔다. 내부적으로도 ‘코드 레드’ 비상사태를 선포했던 긴장 모드는 점차 안정되어, AI 경쟁을 새로운 기회로 삼으려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2023년 4월, 알파벳은 자회사 딥마인드와 구글 브레인(구글 리서치 산하 AI팀)을 합쳐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로 조직을 재편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업 내 중복되는 AI 연구 자원을 통합하여 연구 속도를 높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조치였다. 딥마인드 공동설립자 데미스 허사비스가 통합팀의 CEO를 맡고, 구글 브레인 책임자 제프 딘은 최고 과학자로서 연구전략 고문이 되었다. 이 통합으로 구글은 OpenAI 등에 맞설 단일 강력 AI 연구조직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결과물이 앞서 언급한 Gemini 등이다. 이 변화는 알파벳 체제로 분리했던 조직을 8년 만에 다시금 구글 중심으로 돌리는 사례로, 효율과 협업을 중시하는 피차이 리더십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7월에는 구글 클라우드의 AI 조직까지 딥마인드 산하로 재배치하여, 연구부터 제품화까지 수직적으로 정렬했다. 이처럼 AI 중심으로 회사 구조를 최적화한 것은, 2023년 구글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경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3년 9월, 앞서 미국 DOJ 등이 제기한 검색 독점 소송의 본안 심리가 워싱턴 D.C. 연방법원에서 시작되었다. 이 재판에서 DOJ는 구글이 애플 사파리 기본 검색 지위를 사수하기 위해 연 100억 달러를 지불한 사실 등을 부각하며, ‘구글이 시장을 불공정하게 봉쇄했다’고 주장했다. 구글 측은 사용자의 선택과 제품 우수성으로 90% 점유율에 이른 것일 뿐 경쟁을 방해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수 주간의 증언에서 양측은 애플과의 관계, 검색 시장 진입장벽 등을 놓고 다투었다. 2024년 초 판결이 예상되며, 구글이 패할 경우 향후 사업 운영에 큰 제약(예: 기본검색 계약 금지, 안드로이드 번들 조항 제한 등)이 생길 수 있다. 또한 2023년 10월부터는 미국 FTC도 별도로 구글 광고 기술 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EU에서도 2023년 6월 구글 광고 기술을 조사 중이며, 2024년쯤 결론이 날 전망이다. 이렇듯 2023년은 구글이 법정에서 독점 여부를 직접 다투는 결정적 국면에 접어든 해였다. 내부적으로도 법무팀과 정책대응팀이 총력전 체제에 돌입했고, 피차이 CEO도 재판에 출석해 증언하는 등 전사적 노력이 이루어졌다.
2023년 9월, EU는 구글을 비롯한 6대 빅테크를 게이트키퍼 사업자로 지정하며, 이들에게 적용될 엄격한 경쟁 규칙(Digital Markets Act)을 발표했다. 구글은 검색, 광고, 영상 공유, 안드로이드, 브라우저 등 8개 핵심 서비스가 규제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2024년 3월부터 시행되는 DMA는 자사서비스 우대 금지, 데이터 결합 제한, 사이드로딩 허용, 메신저 상호호환 요구 등 구글 비즈니스 모델에 직접 영향을 주는 조항이 다수다. 구글은 이에 대비해 플레이스토어에 서드파티 결제를 허용하고(수수료 인하), 안드로이드 14부터는 사용자에게 기본 앱 선택화면을 띄우는 등의 변화를 예고했다. 또한 유튜브와 검색 결과에 경쟁 서비스 홍보를 허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DMA는 구글로 하여금 서비스 설계 철학을 ‘개방’ 쪽으로 근본 전환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구글은 해당 요구사항들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례는 규제기관이 사후 처벌을 넘어 사전 행태 규제로 빅테크를 통제하려는 새로운 흐름으로, 구글 비즈니스 전략의 구조적 제약이 될 수 있다.
2023년 애플이 MR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를 공개하자, 구글은 이전에 중단했던 AR 글래스 개발 재개에 속도를 붙였다. 2023년 7월 AR 글래스 프로토타입 공개 테스트를 진행했고, 10월에는 웨어러블 AR 디스플레이 스타트업 Raxium 등을 활용해 차세대 글래스를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2023년 픽셀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첫 픽셀 태블릿 출시, 픽셀폰의 확고한 프리미엄 자리매김(픽셀 8 시리즈에 7년 업데이트 지원) 등 진전을 보였다. 한편 구글은 모듈식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Ara)나 드론 배송 프로젝트 윙(Wing) 등 일부 실험적 프로젝트를 알파벳 다른 부문으로 넘기거나 축소하며, 보다 실용적 제품에 집중했다. 특히 2023년은 픽셀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올린 해로, 북미 프리미엄폰 3위 자리를 차지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는 2016년 시작한 구글의 자체폰 전략이 드디어 성과를 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구글은 AI와 하드웨어 결합을 강점 삼아, 애플·삼성 양강 체제에 도전하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구글은 사무실 출근 정책을 주 3일로 확정하고, 사무실 미출근 직원의 성과평가에 반영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는 팬데믹 기간 느슨해진 조직 결속을 다잡으려는 의도로,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대체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비용 절감 일환으로 사내 커피바 폐쇄 등 복지 축소도 단행되었다. 이런 변화들은 초기 구글식 자유분방한 문화에서 많이 달라진 모습이지만, 직원들은 구글이 처한 현실적인 경영 압박을 인지하고 적응하는 추세다. 다만 2023년 11월, 오픈AI CEO 해임 파동 이후 사티아 나델라 MS CEO가 AI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며 구글 연구 인력 유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구글은 이에 연봉 인상 등으로 핵심 인재를 붙잡는 데 노력했고, 피차이 CEO는 ‘구글의 장기 혁신 환경은 견고하다’며 자신감을 표명했다. 내부적으로는 신규 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재개, 20% 프로젝트 부활 조짐 등 사기 진작에도 힘쓰고 있다.
2023년 3분기 구글은 광고 사업이 다시 두 자릿수 성장률로 반등하고, 클라우드 부문도 출범 이래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 상태가 호전되었다. 이는 2022년 긴축과 2023년 AI 붐 활용 전략이 주효한 결과로 평가된다. 특히 유튜브는 숏폼(Shorts) 광고과 구독 서비스 덕에 매출이 회복되었고, 클라우드는 비용 관리로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구글은 이제 AI 시대의 제품 재창조에 주력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바드의 기업용 버전 및 API 판매, AI 칩(TPU) 클라우드 임대 등)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2023년 말에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검색 광고 키워드 매칭 효율을 높이고, 유튜브 쇼핑 연동을 강화하는 등 핵심 광고사업 혁신도 병행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구글이 10년 후에도 현재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변모해야 함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웨이모는 2023년 미국 몇몇 도시에서 완전 무인 로보택시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며, 알파벳 ‘기타 베팅’ 중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헬스케어 부문 베릴리(Verily)는 사업 재편으로 비용을 줄이며 상용화에 집중했고, 생명연장 칼리코는 별 성과 소식 없이 연구를 지속 중이다. 풍력발전 키티호크, 인터넷 풍선 룬, 로봇 Everyday Robots 등은 차례로 중단되었다. 이는 알파벳 체제 8년차에 접어들며, 실효성 없는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투자 대비 성과가 보이는 분야에만 집중하려는 기조로 읽힌다. 구글은 이제 알파벳 타 사업들의 결과를 지켜보며, 향후 기업 구조를 다시 조정할 수도 있다.
2023년 9월 27일, 구글은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전세계 이용자들이 ‘Google Doodle’로 꾸며진 특별 로고를 보며 축하했고, 언론들은 지난 25년의 공과를 조명했다. 구글은 ‘세상의 정보를 조직화하여 모두가 접근 가능하고 유용하게 만든다’는 사명을 되새기며, 여전히 미션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웹 검색, 유튜브, 스마트폰, 온라인 광고, 클라우드, AI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력과 지배력에 대한 책임도 통감한다고 밝혔다. 2023년 현재 구글은 시가총액 1.7조 달러를 넘는 세계 3위 기업이며, 검색은 90% 점유율, 안드로이드는 70% 점유율, 유튜브는 월간 이용자 25억 명, 지메일은 18억 명 등 경이로운 수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이면에는 정보 독점과 사생활 침해, 시장질서 교란 등의 부정적 평가도 따른다. 구글의 역사 4분의 1세기는 인터넷과 기술 산업의 발전사를 상징하며, 앞으로 구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인류 디지털 미래와 맞물려 있다.
필자 코멘트
1998년 차고에서 출발한 구글은 2025년에 접어들며 검색, 광고, 모바일, 클라우드, AI 등 현대 IT산업의 거의 모든 영역에 발자취를 남긴 거대 기업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눈부신 기술 혁신과 논란의 이면이 공존했고, 조직의 성장통과 문화 변화가 이어졌다. 이제 구글은 인공지능 중심 재편이라는 두 번째 변곡점을 지나고 있으며, 동시에 전세계적인 규제 환경 속에 투명하고 책임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앞으로 구글의 역사는 더 이상 ‘늘 성장만 하는 스타기업’이 아닌, ‘성숙한 글로벌 공기업’으로서 사회와 조화롭게 발전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2025년 현재, 구글은 스스로 혁신하고 반성하며 ‘사악해지지 않으면서 세상을 조직화’하려는 초심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구글이 직면한 도전인 동시에, 그동안 인류에게 엄청난 가치를 제공해온 거대 기술기업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지 지켜보는 전세계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참고 문헌
구글 검색엔진은 ‘파훼되었다’
구글 반독점 소송 ‘분할 확정 아니다’
History of Google
History of Google timeline
The History Of Google Search
A new approach to China
More online ad acquisitions = more competition
Google trials its own AI chatbot Bard after success of ChatGPT
Google US antitrust trials: A tim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