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의 권위주의가 불러온 대표인 참사 5가지를 보자. 1) 모토로라, 2) 삼성전자, 3) 코닥, 4) 보잉, 5) 노키아.
이리듐 프로젝트 – 모토로라
모토로라는 ‘이리듐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화 연결이 가능하도록 위성 통신망을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적 성숙도를 고려하면 시기상조였다. 이리듐 단말기는 시멘트 벽돌만큼 컸고, 위성 통신이 가능한 야외에서만 통화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단말기 가격과 통화료가 기존 휴대전화보다 훨씬 비쌌다.
이 같은 문제를 엔지니어들이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모토로라의 임원들은 내부의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66개의 위성을 쏘아 올리고, 모토로라를 파산시켰다.
HBM 기술 – 삼성전자
HBM 기술은 SK하이닉스가 개발했지만, 양산은 삼성전자가 먼저 성공했다. 당시에는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삼성전자의 임원진은 HBM이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HBM 개발팀을 해체했다. 이후 삼성전자에 있던 다수의 HBM 개발 인력들은 SK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으로 이동했다.
2022년 AI 기술이 급성장함에 따라 HBM 기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SK 하이닉스는 R&D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독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엔비디아에 납품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2024년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삼성전자를 뛰어넘었다. 반면 개발팀을 없앤 삼성전자는 뒤늦게 다시 HBM 개발팀을 구성하고 투자하지만, 여전히 SK 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역사를 보고 커리어를 쌓은 삼성전자의 임원진들이 단순히 사업성 때문에 HBM 개발팀을 없앴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도 기술적 우위가 이 산업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기업의 미래보단 본인의 미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 보인다.
디지털 전환 실패 – 코닥
한때 세계 필름 시장의 90% 장악한 초대형 필름 기업인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 시제품을 개발하고도 상용화를 중단했다. 이 기술이 필름 사업을 파괴할 것으로 생각한 경영진들 덕분이었다. 경영진들은 기술자에 의견을 묵살하고, 필름 사업의 수익성만을 고집했다. 그 결과 캐논, 소니 디지털카메라에 밀리면서 코닥은 무너졌다.
최근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구글이다. 구글은 선도적인 AI 기업이었다. 그러나 AI 기술 산업이 구글의 검색 엔진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 사이 오픈AI의 ChatGTP가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737 MAX 추락 – 보잉
에어버스 A320neo의 성공에 위기감을 느낀 보잉은 빠르게 737 MAX를 개발해 맞불 전략을 놓는다. 빠른 개발과 수익성을 위해 경영진들은 엔지니어들의 안전 경고를 무시한 채 비용 절감과 일정 단축에만 초점을 두었고, 핵심장치인 MCAS(자동실속방지장치) 결함을 알고도 강행하였다.
FFA(연방항공청) 인증은 로비를 통해 쉽게 통과시켰고, 조종사들에겐 제대로 된 매뉴얼과 훈련도 없이 비행을 시켰다. 그 결과 2018년 라이언에어,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 추락 사고가 발생했고, 이 사고로 인해 총 346명이 사망했다.
스마트폰 시대 – 노키아
스마트폰 시대 이전 픽처폰 시대에선 노키아가 독보적인 점유율(약 40%)로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들의 점유율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분명 충분히 대응할 시간은 있었다. 나아가 엔지니어들과 실무진들 역시 이러한 위협에 대해 경고하며, 터치 스크린과 OS의 중요성을 경영진들에게 알렸다.
경영진들은 이 말은 듣지 않았다. 터치 스크린과 OS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스마트폰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을 때 그들은 픽처폰 사업 모델을 끝까지 유지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사업부가 무너지며,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폰 사업이 매각되었다.
- 당시 CEO가 한 말이 지금까지 회자되며, 집단사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졌다.’
경영과 권력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현장의 목소리와 기술적 판단이 묵살되고, 경영진의 권위와 이해관계가 우선된 순간 기업은 위기를 맞이했다. 기술적 한계, 시장 변화, 안전 문제 등 명백한 경고들이 있었지만, 위에서는 듣지 않았다. 이런 비극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조직, 집단 어디서든 같은 일이 반복된다.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집단사고는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권력 분산 구조가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이 끝까지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 기술자와 실무자의 목소리가 경청되는 구조가 중요하다.
또한, 경영진 선임 과정 역시 바뀌어야 한다. 화려한 스펙과 학벌, 커리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정말 회사의 미래와 목표에 맞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이를 위해선 깊은 대화를 통해 그의 ‘진짜 목표’를 파악해야 한다. 경영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다. 미래를 보는 자리다.